재밌는 건 그런 그도 여의도 사투리를 빠르게 학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대구는 저의 정치적 출생지”를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각종 인연을 붙이더니 지난 8일엔 “국민의힘은 ‘강원도의 힘’이 되겠다”, 10일엔 “부산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쯤 되자 “한동훈이 ‘팔도 사나이’가 되려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금 한 위원장의 여의도 문법 수준은 어떨까. 미안한 얘기지만 아직 측정 불가다.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용산 대통령실의 뜻에 반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직 여의도 문법이 어색한 건지, 아니면 실력을 숨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대신 그는 여전히 ‘서초동 사투리’ 혹은 ‘서초동 문법’으로 대화하는 걸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지난달 26일 취임사 때 인용됐다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지금’이라는 단어 겨우 하나가 일치했을 뿐인데, 법조 기자 출신 정치부 기자들은 용케도 알아듣고 받아썼다. 고루한 정치부 기자의 눈엔 ‘그 사람’, ‘지금’이란 단어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가사와 더 비슷한데도 말이다.
여의도 사투리에 적응한 한 위원장은 최근 기자의 질문을 자주 피하고 있다. 기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일정을 다니면서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는 건 여의도 문법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면서 서초동 문법을 고집하는 건 몸은 여의도에, 마음은 서초동에 있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왕 ‘동료 시민’과 함께하려면 온전한 여의도 문법부터 익히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