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인 그가 평가한 인물에는 칭찬보다 허물이 더 컸다. 그의 눈에는 다급하게 있어야 할 일보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더 크게 보였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세상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없어야 할 것이 있을 경우엔 상처가 더 크다.
이를테면 써야 할 사람을 안 쓰면 그 한 사람의 기회 상실로 끝나지만, 안 써야 할 사람을 쓰면 써야 할 사람을 안 쓴 기회 상실에 더해 안 써야 할 사람의 실수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율곡이 가장 걱정한 것은 관료의 부패였고, 이를 암묵적으로 외면하는 왕과 간관(諫官)의 타락이었다. ‘속류(俗流)가 조정에 충만해 조정에서 논의가 있으면 사론(邪論)이 떼 지어 지껄이니 바른 의론의 연약함이 머리털로 천 근의 짐을 끄는 것과 같았다’는 기록을 남겼다(『경연일기』 선조 9년 정월). ‘군역은 노비를 대신 보내고 관리의 녹봉은 백성의 고혈이니 소 치는 아이도 왕과 대관을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다.’(『경연일기』 선조 14년 4월)
나라가 어려울 때를 살펴보면 평생 권력 문전에서 기신거리던 인물이 아직도 그 곁에 어정거리고 있다. 정부 요직이 공천받는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율곡의 말씀이 더욱 생각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