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재기가 의심되는 약국·의료기관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수급 부족이 반복되는 일부 의약품의 경우 실제 공급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약국·의료기관의 과도한 재고 비축이 유통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5일 보건복지부는 수급불안정 의약품 대응 관련해 취재진 대상 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현장조사를 포함한 향후 대책을 밝혔다. 최근 의약품 부족 문제는 올 겨울 인플루엔자(독감),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 등 각종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면서 불거졌다. 복지부는 동절기 호흡기 질환에 대비해 전년 대비 감기약 생산을 늘렸지만, 환자 발생이 늘면서 수급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감기약 1843개 품목에 대한 공급은 2022년 4분기 대비 지난해 4분기에 6% 증가했고, 독감 치료제(오셀타미비르 캡슐제) 공급은 323% 증가했다.
“사재기 의심 약국 400여개…40곳은 사놓고 하나도 안 써”
현장조사 결과, 약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경우 관할 보건소를 통해 행정처분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약사법 제47조 등에 따르면, 약국이 매점매석 등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면 업무정지 1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부과 등의 처벌이 가능하다. 복지부 남후희 약무정책과장은 “이번 조치는 약국이 갖고 있는 재고를 반납하는 등 다시 유통되도록 해 현장의 공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절차”라며 “현장조사 대상을 모두 불법으로 보고 행정처분을 하려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5-FU’ 부족은 업체 공정 지연 때문…제조사 1곳 추가
정부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병원 및 약사회로부터 이 약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상황을 공유 받고 원인을 파악했다”며 “제조업체에 생산 일정을 최대한 앞당길 것을 요구해 현재 공급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5-FU는 1개 제조사만 공급을 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원료 수급을 최대한 도우면서 1개 회사가 추가로 공급하기로 했다. 2월부터 수급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의약품 부족을 현장의 신고를 받은 뒤 사후 조치하게 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전에 수급 상황을 예측하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식약처는 의약품 출고량 및 사용량 등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 수급 불안정을 예측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연구용역을 시행해 올해 중 시범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다.
국내 의약품 생산역량 강화를 위해 식약처가 지정한 국가필수의약품이 국산 원료를 사용할 경우 약가를 가산하는 등 약가 제도도 개선한다. 현재 자사 직접생산 원료를 사용한 제네릭(신약 특허가 만료돼 동일 성분으로 다른 제약사가 생산하는 약)에 대해 1년간 68%를 가산하는데, 앞으로는 국산 원료를 쓰면 5년간 68% 가산을 적용한다.
복지부·식약처·질병청 등의 정부 기관과 대한의사회·대한약사회 등 5개 의약단체가 참여해 지난해 3월부터 운영 중인 수급불안정 의약품 대응 민관협의체도 제도화할 계획이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현재 법적인 근거 없이 민관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제도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올라가 있다”며 “‘공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긴급 생산·수입 명령이나, 유통 개선조치 등을 법적 근거를 갖고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