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 수출 호황으로 기아 평택항에선 밤 8시까지 일하는 잔업이 많았다. 그만큼 평택항에서 세계 곳곳으로 실려간 물량도 크게 늘었다. 2022년 기아 평택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 자동차는 61만2671대였으나 2023년에는 69만1117대로 70만대에 근접했다. 지난해 평택항을 거쳐 해외로 나간 기아 수출차(69만1117대) 4대 중 1대(17만7264대)가 EV6를 비롯한 순수 전기차였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수출 호조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사상 3분기 만에 영업이익 20조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다시 썼다.
반도체 부진 속에서 한국차의 선전은 돋보인다. 특히, 달라진 시장 상황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했고, 제조기지 다변화로 공급망 리스크를 줄였다. 글로벌 1ㆍ2위 자동차 기업 토요타와 폭스바겐보다 한발 앞서 전기차 시장을 선점한 게 대표적이다. 2020년 말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은 아이오닉5, EV6, EV9으로 이어지며 전기차 수출 성과를 이끈 핵심 비결이다. 플랫폼은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파워트레인 등 자동차에 필수적인 요소와 뼈대(차체)를 일컫는다. 현대차는 이 뼈대를 플랫폼처럼 활용해 다양한 전기차를 빠르게 개발했다.
① “전기차에 미래” 빠른 전환
이 플랫폼으로 생산한 아이오닉5와 EV6 두개 모델만으로 지난해(1~11월) 수출 15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전체 수출 전기차 31만5178대의 절반에 이른다. 잘 키운 전기차가 2년 만에 수출 효자 상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게임에 안주하지 않고 게임의 룰을 새로 만들어 가는 현대차에 주목한다. 달라진 세계 경제 지형에 따라 개편되고 있는 무역 패러다임 ‘무역 4.0’과 닮은 지점이다. 현대차 사례 연구를 통해 경영 기법을 진단한 윌리엄 바넷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폭스바겐과 같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이제는 현대차의 전기차 플랫폼 개발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는 대량생산ㆍ내연기관이 상징하는 선형 경제(linear economy)에서 벗어나 전동화ㆍ탈탄소가 중요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로 이동하고 있는데 현대차가 이에 기민하게 대응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는 E-GMP 이후 2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개발하는 중이다. 2세대 플랫폼에선 셀-모듈-팩 3단계의 배터리 공정을 2단계로 간소화해 에너지 밀도를 높일 계획이다. 전기차의 단점인 주행거리를 차세대 플랫폼으로 극복해 경쟁자를 압도하겠다는 뜻이다.
② “중국 밖으로” 제조기지 다변화
특히 싱가포르 혁신센터는 현대차가 확장할 글로벌 전기차 공장의 모태 역할, 즉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가 될 전망이다. 싱가포르 혁신센터에서 현대차는 자동차 공장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무인운반 로봇(AGV)과 자율이동 로봇(AMR)으로 채웠다. 이곳에서 검증한 생산 기술을 ‘복사+붙여넣기’로 글로벌 공장으로 확산해 공급망을 빠르게 혁신하겠다는 게 현대차의 복안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쟁사들이 잘 못하는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에 더한 ‘빠른 추격’ 능력이 현대차의 강점“이라며 “이런 강점이 공급망 위기와 같이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급변기에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