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빈 시내 복판에 올브리히가 설계한 분리파 전시관을 건립하고 최초의 분리파 전시회를 개최했다. 카를 비트겐슈타인이 건설 비용을 전담했다.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부친이며, 제철업의 세계적 부호로 진보적 예술가들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분리파 전시는 아르누보와 인상파 등 당시 유럽의 새로운 예술을 초대하고 건축과 공예, 미술과 음악의 통합을 시도했다. 1902년 14회 전시회는 베토벤에 헌정하는 통합 전시회로, 클림트가 그 유명한 ‘베토벤 프리즈’ 벽화를 그렸고, 구스타프 말러는 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9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1904년 노선 갈등으로 빈 분리파는 짧은 수명을 다했으나 개방과 연대와 통합이라는 분리파의 정신은 근대를 여는 핵심적인 가치가 되었다.
‘창(創)’자는 곳간(倉)과 칼(刀)의 조합으로 낡은 기득권을 잘라낸다는 뜻이다. 창조는 단절부터 시작하는 것, 여전히 독립 전시장으로 운영되는 분리파 전시관에서 새삼 깨닫는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