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취임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22번 언급하며 “선민후사(先民後私)”를 강조했다. 그는 “저는 선당후사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다짐하자.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과 함께 ‘동료시민’이란 단어도 열 차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정치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그는 “미래와 동료시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은 더욱 그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동료시민’이란 단어는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는 한 위원장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장은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 간의 동료 의식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재해를 당한 낯선 동료시민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찜질방을 내주는 자선, 지하철에서 행패 당하는 낯선 동료시민을 위해 나서는 용기 같은 것들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완성하는 시민들의 동료 의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그 동료 의식을 가진 당이어야 하고, 우리는 모두 동료시민”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한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쉽고 간략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한 위원장의 첫 일성이 확실히 여의도 사투리는 아닌 것 같다”(여선웅 전 청와대 행정관)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대전을 찾아 “여의도에서 300명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라며 “나는 나머지 5000만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던 그였다. 비교적 빠른 발언 속도, 손동작을 많이 활용하는 것도 한 위원장 연설의 특징이다.
그러면서 “만주벌판의 독립운동가들은, 다부동 전투,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의 영웅들은, 백사장 위에 조선소를 지었던 산업화의 선각자들은, 전국의 광장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과 넥타이부대들은, 어려운 상황이란 걸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가 되었다”고 대비시켰다. 역사의 진보를 일군 세력을 국민의힘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을 민주당으로 치환해 넉 달 뒤 총선을 ‘정권 안정 대 심판’이 아닌, ‘미래 대 과거’ 구도로 재편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다.”
한 위원장의 이 발언 역시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영국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운 처칠의 명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이날 한 위원장이 맨 넥타이도 화제였다.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가 새겨진 제품으로, 한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법무부 장관 취임식 때도 이 넥타이를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