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보야, 우승 축하해.” (염경엽 감독)
“경엽아, 너도 올해 고생했다.” (홍명보 감독)
고려대 동기인 두 사람은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물을 만큼 친한 사이다. 고려대 운동부는 같은 건물을 합숙소로 썼다. 염경엽 감독은 “농구·야구·축구가 같은 층을 써서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그때부터 명보는 수퍼스타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명보 감독은 “1학년들은 선배들 뒤치다꺼리를하다 보니 자주 마주쳤다. 직장인들처럼 선배들한테 욕먹고, 옥상에서 만나 같이 한탄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염경엽 감독은 법학과, 홍명보 감독은 체육교육과를 졸업했다. 염 감독은 “당시엔 체육 특기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1지망으로 법대를 썼다. 아버지가 고대 법대를 졸업하셔서 아들이 후배가 되길 바라셨다”며 “법대 수업에 들어갔는데 반절이 한자여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체육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어서 사범대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동북고를 졸업한 홍 감독은 동북중에 교생실습을 나갔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홍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라 학생들이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부에 들어가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다. 홍 감독은 "운동을 잘 하는 편이었지만, 학교에 축구부 밖에 없었고, 다른 종목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염 감독은 처음엔 축구와 야구를 동시에 했다. 그는 "사실 운동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강제로 축구와 야구를 하라고 하셨다. 그러다 5학년 때 야구만 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고려대 운동부에게 연세대와의 정기전은 1년 농사를 결정짓는 경기다. 염경엽 감독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보다 많은 사람들이 잠실 야구장을 찾는 경기다. 어떤 큰 경기보다 재밌었다"고 떠올렸다. 홍 감독은 "승패에 대한 대우가 확실했다. 1학년 때 졌는데 한 학년당 회식비 10만원 정도가 나와서 술 몇 명 먹으면 끝이었다. 3학년 때 이겼을 땐 다 같이 명동 나이트클럽에서 양주를 마셨다"고 웃었다.
K리그 울산과 프로야구 LG는 우승에 목마른 팀이었다. 울산은 2005년 이후 2021년까지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홍 감독 부임 첫해인 2021년엔 2위에 머물렀다. LG는 1994년 두 번째 우승 이후 정상과는 인연이 멀었다. 그래서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염 감독을 영입하면서 ‘우승’을 목표로 내걸었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을 맡은 뒤 내 임무는 무조건 우승이었다. 감독으로서 철학도 중요하지만, 가장 급한 건 결과였다”고 말했다. 염경엽 감독도 “김인석 LG 트윈스 사장님이 ‘우승하기 위해서 염 감독을 모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반대했다. (SK 감독이던 2020시즌 경기 도중 스트레스로 인해)한 번 쓰러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는 마음으로 LG 감독을 맡았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은 “(왕좌를)지킨다는 마음으로는 2연패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더 많은 팀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입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잘 됐다. 지키려고만 했으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염경엽 감독은 “(야인 생활을 하면서) 2년을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게 큰 도움이 됐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리더십과 전략을 다시 생각했다”고 밝혔다.
두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원 팀’이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에게 배려와 존중, 특별함을 강조했다. 선수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홍명보 감독은 “때론 강한 카리스마도 필요하지만, 선수들이 잘할 수 있게 감독이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팀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염경엽 감독이 꼽는 2023시즌 최대 고비는 5월이었다. 염 감독은 "초반에 무너질 수 있었다. 켈리가 흔들리고 고우석이 없었다. 어린 선발투수들의 성장을 기대했는데, 실패했고 불펜까지 무너졌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끈질긴 야구를 통해서 역전승을 만들고. 5월에 승패 마진 10을 거둔 게 힘이 됐다"고 말했다.
울산은 시즌 초반 독주 체제를 굳혔으나 국가대표 선수가 많아 고민이다. 홍명보 감독은 "머리가 아프다. 1년 동안 달려서 휴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30대 선수들은 더욱 걱정이다. 대표팀에 다녀온 뒤 곧바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도 있다. 슬기롭게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염 감독은 대학 동기 홍 감독에게 “2연패를 한 ‘기(氣)’를 좀 나눠달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홍 감독은 “염 감독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2연패를 할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염 감독은 “프로축구 울산이 3연패를 해 왕조를 구축하길 바란다. 프로야구 LG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