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뿐만 아니라 서술·논술형 시험이 많은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도 학생들의 ‘지렁이 글씨’로 난관의 연속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철학과 교수는 “글씨를 못 알아본다고 무작정 틀렸다고 할 수도 없어서 조교와 머리를 맞대고 글씨를 ‘해독’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변호사 시험 등 국가고시 답안 채점에 다수 참여한 경력이 있는 한 교수도 “글씨를 못 쓴 게 아니라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의 답안지도 다수”라며 “답안을 통해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것까지가 실력”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학생들 사이에선 오히려 손글씨 시험이 시대에 뒤쳐졌단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구모(25)씨는 “평소 노트북으로 공부를 하다 내신 시험만 수기로 치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익숙하지 않은 필기 탓에 시험기간만 되면 5명 중 1명은 손목보호대를 꺼낸다”고 하소연했다. 외교관 선발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5)씨도 “악필이면 감점이 된다는 소문에 펜도 5번 이상 바꿔가며 대비를 했다. 시험 때문에 글씨도 연습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CBT 방식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천경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교수들도 글씨를 해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학생들도 고생하지 않아도 돼 반갑다”며 “이번 CBT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학교 시험에까지 확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장비와 시설 문제로 교내 시험까지 CBT 방식이 도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로스쿨 관계자는 “변호사 시험 시설 마련을 위한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며 “교내 시험을 위한 시설 도입은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