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역량이 국가 경쟁력 좌우
절대평가 도입 뒤 실력 떨어져
영어 포기할 건가, 정책 바꿔야
절대평가 도입 뒤 실력 떨어져
영어 포기할 건가, 정책 바꿔야
그 결과 영어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도 아닌데도 매년 응시자 절반이 3등급 이상을 받게 되니 영어는 더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는 과목이 됐다. 최근 치른 2024년도 수능에서는 기존의 상위 등급 양산 절대평가 체제에 ‘킬러 문항’ 배제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추가됐다. 그런데도 채점 결과 최고등급인 1등급 취득자 비율은 4.7%를 기록해 절대평가 도입 이전의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갔으니 충격적이다.
더 불길한 소식은 지난 10여년간 중위숙련도 수준에 분류되며 꾸준히 세계 36위권 정도를 유지하던 한국의 ‘영어 숙련도 지수(EPI)’도 올해는 49위로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으로 상징되는 영어교육 경시 정책을 시행한 지난 7년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영어 절대평가 실시 이후 일선 고교에서 국어와 수학 등 다른 기초교과목에 비해 영어 선택과목의 수강률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국어를 100%로 봤을 때 수학은 92%, 영어는 86% 수준이다.
공립 중학의 영어교사 임용 비율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 추진 계획 발표 이후인 2014년을 기준 시점으로 비교하면 2023학년에는 국어가 88%, 수학 85%인데 영어는 59%로 축소됐다. 수능 영어를 경험한 대학생들은 수능 점수 등급이 자신의 실제 영어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향후 진출할 분야나 진로에 요구되는 영어 능력을 충분히 평가해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학들은 덩달아 교양영어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해당 과목을 필수과목군에서 해제하고 있다. 영어교육 경시와 축소 추세는 사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공교육이 유일한 통로인 서민층 자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사회 계층 간의 ‘영어 격차(English divide)’를 심화시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되고 정시 비율이 현행처럼 유지되면 내신 비중이 줄어들고 수능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그 결과 영어 공교육은 더욱 위축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상상할 수 없을 격차를 만들 것이다.
이런 정책이 궁극적으로 영어 공교육을 더욱 망가뜨려 유아·초등생 대상 영어 조기 사교육을 조장하고 국어·수학 같은 다른 주요 과목의 사교육비 부담을 더 키우는 풍선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과연 영어교육을 이대로 포기해야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당국은 현행 수능 영어 절대 평가 체제를 2028년 이후까지 유지할 계획인 듯하다. 지금의 영어 방기 정책으로는 젊은 세대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기초학력의 균형을 도모하고 국가경쟁력의 근간을 바로 세우려면 영어 관련 학술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해온 것처럼 교육과정의 동일 기초과목군(국어·영어·수학)에는 동일한 수능 평가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기 전에 교육 당국의 신속한 정책전환을 촉구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용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