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법원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공정’과 ‘신뢰’ 문제도 강조했다. 그는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법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며 “불공정하게 처리한 사건이 평생 한 건밖에 없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그 한 건이 사법부의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재판이 공정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판의 전 과정에 걸쳐 공평한 기회가 보장돼야 할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발언의 기회를 줘야 함은 물론이고, 항상 겸손하면서도 공정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난 9월 퇴임한 후 78일 만에 대법원장 자리에 오른 조 대법원장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은 대법관 추천과 법원장 인사다. 김 전 대법원장이 지명했던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당장 3주 뒤인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난다. 일단 새 대법관 천거 공고는 냈지만,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 남은 절차를 감안하면 신임 대법관 취임은 이르면 내년 3월이라고 한다. 두 달 이상 대법관 두 명의 자리가 비게 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13명)나 소부(4명) 구성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조 대법원장은 이날 “재판 제도와 사법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법관이 부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살피겠다”며 사법 행정에 대한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이날 조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문제 중 특히 재판 지연 문제의 해소를 위해선 국회 차원의 결단도 필요하다. ‘법관 증원법’이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관 정원은 2014년 법 개정으로 370명 증가해 3214명이 된 이후 9년째 동결돼 있다. 그 사이 정원은 서서히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현재 결원이 단 21명뿐이라 법관 정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신입 법관 선발 규모는 10~20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2월 법무부를 통해 법관 정원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370명 증원하는 법안을 냈다. 재판 지연 문제가 심화하자 ‘국민의 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를 위해 법관 증원이 필요하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쭉 볼모로 잡혀있다. 국민의힘은 “검사 증원 없이 법관 증원 없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검사는 절대 못 늘린다”고 맞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정치권이 재판지연을 비난하면서 정작 그 해결책인 법관 증원을 손 놓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