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지금 와서 보면 우리의 통치체제가 뭔지 헷갈릴 수준까지 변형됐다고 느낀다. 우선 행정부·입법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인사청문회 통과율이 높다는 이유로 현직 의원들의 장관 진출이 늘더니 문재인 대통령 땐 18명 중 6명에 이른 적이 있다(2021년 1월 개각). 직전까지 의원이었던 이를 포함하면 8명이었다. ‘의원님 내각’으로 불렸는데 ‘님’을 빼도 무방했다.
총선 앞 정부 안정성 놓친 대통령
입법권으로 정부 포박한 민주당
서로 비난만…무책임 정치의 극치
입법권으로 정부 포박한 민주당
서로 비난만…무책임 정치의 극치
행정부와 여당 이상으로 야당의 행태도 괴이하다. 168석 거대 야당이라고 해서 ‘야당(the opposition)’의 본질적 역할이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비판과 감시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걸 넘어 입법권으로 정부를 포박해 자기 일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정부의 반대에도 국가정책(양곡관리법·간호법·방송법·'노란봉투법')을 강제하고, 정작 정부 어젠다는 우주청은 고사하고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폐지도 외면한다. 정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은 억지로 떠안기는 꼴이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땐 곁도 안 주던 일들이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엔 ‘민주당 수정안’을 얘기하더니 이번엔 ‘이재명표 예산’을 짜고 있다. 법률안이야 대통령이 거부하면 되지만 예산안은 그것도 하지 못한다. 건국 아버지들이 상상하지 못한 경지다. “국회는, 국회에 나온 대의원은 자기가 세금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돈’으로 지출해 나가는 집행기관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상적인 계획을 제출해 그것을 가결하면 정부는 그것을 집행해 나갈 수 없다”(유진오 박사)고 했었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정부 구성을 두고도 해임안·탄핵안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게 몇 달 전인데 또 탄핵하겠다고 나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취임 석 달 만에 물러나게 했다. 그러고 또 “제2, 제3의 이동관을 모두 탄핵하겠다”(홍익표 원내대표)고 벼른다.
결국 우리는 외양적으로 대통령 권력이 제일 센 듯하지만 일부 분야일 뿐이고, 상당수 권력은 입법부로 빨려들어가는 체제하에 있다. 입법부 특히 야당은 완력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행정부로 미루고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에만 골몰한다. 대통령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애쓰기는커녕 야당을 탓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욕만 오간다. 정치학자 박상훈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치의 큰 변화는 책임정치 즉 권한을 준 만큼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하기보단 상대방에게 책임을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는데 동의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치체제를 표현할 말이 떠올랐다. 내각 무책임제가 짙게 밴 대통령 무책임제,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