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42일 만에 조기해산…현실정치에 막힌 ‘주류 희생론’

중앙일보

입력 2023.12.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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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오른쪽)이 7일 혁신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끈 국민의힘 혁신위가 지난 10월 26일 출범한 지 42일 만에 ‘빈손’으로 해산했다. 활동 시한(12월 24일)보다 보름여 빠른 조기해산이다.
 
인 위원장은 7일 12차 혁신위 회의를 마친 뒤 “사실상 오늘 혁신위 회의를 마무리한다”며 “국민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해서 우리는 50%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50%는 당에 맡기고 기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혁신위는 오는 11일 당 최고위에 지금까지 나온 혁신안을 종합해 최종 보고할 계획이다.
 
인 위원장은 회의에서 “정치가 참 어렵다”면서도 “이순신 장군과 하나님은 같은 말을 하셨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이라며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회의 뒤 브리핑에선 김기현 대표에게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개각을 일찍 단행해 좋은 후보가 선거에 나올 기회를 주셔서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고 운을 뗀 그는 “두 번째는 김기현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이렇게 알아볼 기회를 주셔서 많이 배우고 나간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전권을 준다’고 해놓고선 희생 권고는 묵살한 김 대표에게 서운한 감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의원과 만나 혁신위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안 의원은 회동 뒤 취재진에게 “혁신은 실패했다고 본다”며 “저도, 인 위원장도 치료법을 각각 제안했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젠 김기현 대표와 당 지도부가 답을 내놓을 차례”라고 했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들어선 인요한 혁신위에 대한 당내 평가는 엇갈린다.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던 인 위원장은 출범 다음 날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의 징계를 해제하는 ‘대사면’을 제안했다. 또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제주 4·3 평화공원을 참배하는 등 당 안팎의 ‘통합’ 노력으로 정치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지난달 3일 당 지도부·친윤 핵심 험지 출마론을 2호 안건으로 너무 일찍 꺼내 ‘과속’한 건 실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밑 숙성’을 거쳐 후반기에 희생 권고안을 냈더라면, 추후 공천관리위원회에 자연스레 인계하는 상황도 만들 수 있었을 거란 뜻이다.
 
다만 김기현 대표 등에 대한 희생 권고가 결국 공천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혁신위의 집요한 희생 요구가 결과적으로 당 공천 방향을 ‘희생’으로 정리해 놓은 셈”이라며 “당 대표 등 주류세력이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가 빈손 조기해산한 데 대해 당 지도부를 겨냥한 쓴소리도 나왔다. 수도권 지역 의원은 “‘전권을 주겠다’고 인 위원장을  불러놓고 ‘싫은 소리 한다’며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든 셈”이라며 “김기현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인 위원장이) 한 편의 개그 콘서트를 보여주고 떠났다”며 “기득권 카르텔에 막혀 좌절했지만 그대가 있었기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