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1522년 마젤란이 지구 한 바퀴를 최초로 돌아 동양으로 가는 길이 완성된 후로도, 우리나라는 서양에 가장 늦게 드러난 은자의 나라였다. 140년 전 영국과 러시아 간의 그레이트 게임으로 이뤄진 동양과 서양의 조우는 정치·경제 영역에서 문화로 파장이 이어졌다. 동양의 문화와 예술, 서양의 사상과 기술이 서로를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펄벅이 한국에 특별한 애정으로 선물한 『살아있는 갈대』(1963)는 구한말부터 망국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4대의 이야기이다. 제국주의 시대 아시아 상황을 서방에 알리려 힘쓴 참여작가로서의 역할도 크다. 140년 전, 지구상 누가 지금의 국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사이 벌어진 많은 전쟁과 힘의 변화, 과학의 성과를…. 앞으로 140년 후는 어떨까.
혹자는 영국이 많은 땅을 잃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인의 거의 모든 일상, 의복·시스템·문화·영어 등이 모두 ‘영국 것’이다.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말한 ‘늙지 않는’ 나라, 강대국의 조건일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는 땅이 너무 작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와 노래, 정체성, 문화와 정신이 세계인의 삶에 스며든다면 우리의 영토는 훨씬 더 광대할 수 있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