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중·러의 상황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에 놓인 판이 이렇다. 21일 기습적인 심야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이런 ‘기회의 창’이 열린 틈을 극대화한 도발이다.
정부가 이에 남북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에 이어 국제 제재 등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北, 기세 몰아 “여러 개 더 발사”
김정은은 앞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에 실패한 뒤 곧바로 재발사를 예고했다. 또 지난 9월엔 직접 러시아로 달려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탄약과 포탄 지원을 대가로 위성 기술 전수를 약속받는 등 잰 행보를 보이며 조급함을 숨기지 않았다.
방러 직전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0발을 탑재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처음으로 진수했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상적 운용 자체가 힘들다는 게 군의 평가였다.
군사정찰위성과 핵잠수함은 김정은이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직접 제시한 여러 무력 과업 중 가장 미진한 무기체계로 꼽힌다. ‘핵 패키지’ 완성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라는 뜻도 된다. 김정은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데드라인이라도 정해놓은 듯 서두르는 김정은의 조바심 뒤에는 핵 능력 고도화를 통해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가을 치러지는 미국의 대선 결과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과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으며 냉·온탕의 관계를 지속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美 도전받는 다극화 세계, 김정은의 ‘놀이터’로
특히 러시아는 대놓고 법과 규범을 무시하며 ‘공범’을 자처하는 데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건설적 역할’은 외면한 채 북한의 불법 행위를 방치 내지는 묵인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두 개의 전쟁에 관여하며 군사적 한계점과 리더십을 시험받는 중이다.
이런 구도는 ‘가장 무서운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김정은의 위험한 자신감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1·2차 위성 발사 때도 회의를 소집했지만, 추가 제재는커녕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정부, 길게 보고 촘촘하게 때린다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추가적으로 남북 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북한이 군사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전술적 이익이 질과 양 측면에서 모두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북한이 아파할 만 한 남북 합의 효력 정지 조치가 누적될 경우 북한의 숨통을 단계적으로 조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외적으로 정부는 뜻을 함께 하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공동 전선 구축에 골몰하고 있다. 한ㆍ미ㆍ일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22일 오전에 열린 데 이어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의 소위 위성 발사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의가 조만간 소집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위성 발사 성공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곧 우려를 자아내던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이전은 사실상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월 두번째 실패 이후 불과 약 3달 만, 북·러 정상회담 이후 약 2달 만의 ‘속성 성공’은 러시아의 지원을 통한 기술적 문제 극복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자체로 한ㆍ미ㆍ일을 비롯한 동맹, 우방이 중첩적으로 대북, 대러 독자 제재에 나설 명분은 확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추가 대북·대러 독자 제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여러 주요국의 독자 제재가 중첩적·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유엔 안보리 제재 못지 않은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