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반,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1세는 오래도록 괴롭히던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격파해 러시아 밖으로 밀어냈다. 1561년 중앙에 텐트 모양 첨탑을 가진 성당을 세우고 주변에 8개의 돔을 가진 작은 성당들을 세웠다. 중앙 첨탑은 성모 마리아에게 축성했고, 8개의 돔은 칸국에 대한 8번의 공격과 승리를 기념했다. 1588년 당시 러시아인이 존경한 ‘성스러운 바보 바실리’을 안장하고 그 위에 10번째 성당을 축성했으며, 이후 이 일군의 성당을 묶어서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 불렀다. 원래 모두 별개의 성당이었는데 17세기에 성당 사이에 복도를 덮고 전면에 아케이드를 세워 입구로 삼아 하나의 실내로 연결했다.
양파 모양 돔들은 비잔틴 요소지만 텐트 모양 첨탑은 러시아 고유의 것이다. 건물 구성은 르네상스의 문법을 따랐으나 세부 장식은 이슬람의 영향이 크다. 신생국가 러시아는 여러 선진 문화를 슬라브의 동화적인 감성으로 수용하면서 러시아 특유의 문화를 창조했다. 꽃 모양 장식이 풍만한 복도를 따라가면 성인들의 이콘화와 단성률 성가 음향으로 가득한 10개의 예배실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여러 독립된 예배실이 모여 하나의 성당을 이루는 실내도 그 외형만큼이나 세상에 다시 없을 공간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