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꽃의 아름다움을 옮겨 담은 그릇
겨울은 나뭇잎은 바닥에 떨어지고 꽃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시기다. 긴 겨울에도 꽃의 화사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방법을 고안했다. 피어있는 꽃을 그대로 말린 드라이 플라워(dry flower), 오랫동안 생화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화학 약품 처리한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등이다. 드라이 플라워와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꽃의 형태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방법이다.
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에 꽃의 형태를 살려서 장식하는 방법도 있다. 압화 그릇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릇으로 만들 흙 반죽의 표면에 꽃을 눌러 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약품 처리한 꽃을 눌러서 건조한 뒤 그림을 그린 것처럼 화폭에 구성한 조형예술의 일종인 압화(pressed flower·押花)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릇 표면에 꽃의 형태를 남기는 압화 기법은 해외에서 주로 쓰는 도예기법이다. 이 압화 도예기법을 체험해 보기 위해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스토 스튜디오를 찾았다.
초보자가 압화 그릇을 만들 때는 주의사항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자신이 어떤 느낌으로 그릇에 꽃을 장식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서 재료가 될 꽃을 선별해야 한다. 두 번째, 꽃의 두께를 잘 고려해 그릇의 두께를 정해야 한다. 만약 해바라기처럼 꽃잎이 크고 두꺼운 꽃으로 그릇의 표면을 장식하려면 그릇을 만들 흙 반죽의 두께도 두꺼워야 한다. 반면 꽃잎이 얇은 꽃은 흙 반죽이 비교적 얇아도 괜찮다.
첫 번째로 나무판 위에 광목천을 펼쳐 올리고 주름을 펴준다. 스프레이로 광목천 위에 물을 뿌린 뒤, 천 표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주름을 편다. 나무판 위에 바로 백자토를 올리면 흙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수축할 때 나무판과 딱 붙는다. (너비가 넓게 짠 베로 만든) 광목천은 숨구멍이 있어서 통풍이 잘돼 백자토와 나무판 사이에 깔면 공기 순환을 도와 흙이 손상되거나 갈라지는 걸 최대한 막아준다.
두 번째 단계는 백자토 덩어리 밀기다. 칼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밀듯, 밀대로 백자토 덩어리를 밀어서 납작한 판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문재영 대표가 백자토 옆에 타원형 석고 틀을 놓았는데, 백자토 덩어리의 1.5배 정도 면적인 석고 틀을 다 덮을 정도의 면적이 돼야 한다. 적당한 크기로 밀어낸 백자토 판은 물을 묻히고 꽉 짜낸 스펀지로 위를 쓸어준다. 이렇게 물을 먹인 스펀지로 쓸어주면 흙에서 수분이 증발해 표면에 금이 가거나 구멍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타원형 그릇을 엎어놓은 형태의 석고 틀을 손물레에 올려두고, 그 윗면에 꽃을 장식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꽃을 놓은 뒤, 백자토 판으로 덮으면 그릇의 바닥에 꽃의 형태가 새겨진다. 원예용 가위로 원하는 꽃과 꽃잎을 잘라서 석고 틀 윗면에 배치하는데, 이때 그릇의 용도를 고려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면 가운데보다는 가장자리에 꽃을 배치하는 게 음식물이 덜 끼고, 설거지할 때도 수월하다. 반면 장식용 그릇이라면 과감한 배치로 화려하게 꾸며도 된다.
도장으로 문구를 새기는 동안 석고 틀이 백자토 판의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두 개가 분리가 가능한 상태가 된다. 분리해서 뒤집으면 백자토 판 안에 내가 수놓은 꽃들의 모양이 보인다.
이제 핀셋으로 백자토 판에 박힌 꽃을 빼낸다. 핀셋으로 꽃과 꽃잎을 제거한 부분에 울퉁불퉁한 요철이 남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핀셋 자국이 난 부분은 작은 붓에 물을 묻혀서 살살 문질러 준다. 핀셋으로 표면에서 꽃을 제거하는 과정을 끝내고, 그릇 입구의 테두리 부분을 위를 향하도록 수직으로 좀 더 다듬어 주면 가마에 구울 준비가 끝난다.
압화 기법을 사용한 그릇 만들기는 꽃의 형태에 따라 표면에 다양한 문양과 질감을 낼 수 있다. 자연의 형태를 그릇 표면에 그대로 구현하기 때문에 조각·그림에 능하지 않은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도자기를 굽는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초겨울 우리 아이와 함께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한 그릇을 만들어 꽃이 피었던 계절을 추억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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