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열린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 행사 중반쯤 갑자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의 목소리가 약 500만㎡(151만 평) 공장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하루아침에 선진국 자동차 업계를 미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노력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은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이 꿈은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날이 온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13일 울산공장서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
세계 최대 車 공장→미래 모빌리티 중심지
“사람 중심의 혁신으로 100년 기업 꿈꾼다“
정의선 “선대회장 ‘하면 된다’ 정신 계승“
현장에서 이 말은 들은 정의선 회장은 뭉클한 표정을 지으며 “선대회장이 생각했던 정신, 그리고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같이 노력할 각오”라고 다짐했다. 이날 정 회장 뒷편으로는 과거 포니를 생산했던 당시의 조립라인 사진과 전기차 아이오닉5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보행 로봇 ‘스팟’이 있는 미래 공장 이미지를 나란히 배치해 화제가 됐다.
이날 정 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을 태동시킨 현동차 울산공장이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혁신 모빌리티 기지’로 탈바꿈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토대로 내연기관차 반세기 역사를 넘어 ‘전동화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사업 비전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50년 전동화 시대를 향한 또 다른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동차 불모지→단일 규모 세계 1위 자동차 공장→미래 혁신 모빌리티 중심지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 ‘전기차 전용공장’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울산 EV 전용공장은 총 2조원을 투입해 2025년 완공 예정으로, 지난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9년 만에 세워지는 현대차의 국내 신공장이다. 종합성능시험장이 있던 54만8000㎡(약 16만6000평) 부지에 터를 잡았다. 첫 생산 차종은 제네시스의 초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모델이 될 전망이다. 양산은 2026년 1분기부터다.
전기차 ‘흔들’ 해도 현대차는 ‘뚝심’ 투자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단기적으로 시장이 흔들린다고 해서 전동화 전환을 연기한다면 오히려 나중에 실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의 전동화 전환을 앞당기려고 했다가 제동이 걸린 것이다. 현대차는 원래 계획대로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어서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기차 ‘전용공장’이 국내에 처음 세워진다는 의미도 남다르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약 3만 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작업 공정도 완전히 다르다.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에는 최첨단 설비와 함께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유연생산 시스템이 도입되고,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가 구축한 제조 혁신 플랫폼도 가져온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에서 전기차를 함께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세계 1위 테슬라가 구현한 ‘기가팩토리’의 생산 효율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며 “과감한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원가를 절감하면 저렴한 전기차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일 연구원은 “조지아주 신공장(메타플랜트) 가동은 현지 수요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 국내 공장과 현지의 생산량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29년 만에 지어지는 국내 자동차 신공장
전문가들은 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식을 통해 국내 투자에 나선 만큼, 정부도 거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유지수 전 자동차산업학회장(국민대 교수)은 “100년 전동화 기업이 되기 위해선 탄탄한 내수 확보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며 “국가적으로 충전기 확충 등 인프라 구축을 확대해 ‘거리에 대한 불안감’(range anxiety)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기공식에는 정 회장과 장재훈 사장, 이동석 국내생산담당 부사장 등 현대차그룹 경영진과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이채익‧박성민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