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의 최고 참모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대모이기도 한 80대 수전 허시(SH)가 버킹엄궁을 찾은 시민단체 대표 응고지 풀라니에게 거듭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서 벌어진 파문이다. “영국”이라고 답했는데도 계속 질문했다.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국적(또는 민족)이 뭐지?” “여기서 태어난 영국인인데.”
“아니, 진짜 어디서 왔지? 너희들(your people)은 어디서 왔는데?” “너희들? 무슨 얘기지?”
풀라니의 부모가 1950년대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SH는 “카리브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풀라니는 바로 “난 아프리카계 카리브 혈통의 영국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곤 다음날 트위터(X)에 “이후 행사 기억이 흐릿하다”고 썼다. 충격을 받았던 게다.
인요한에 'Mr 린튼'이라며 영어
비난 위해서 미국계 부각 의심
혐오의 정치 언어 구사 아닌가
비난 위해서 미국계 부각 의심
혐오의 정치 언어 구사 아닌가
‘너 진짜 어디서 왔니’나 ‘아들의 피부색’ 어디에도 튀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영국 왕실이 인종주의자(racist)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저류에 깔려 있음직한 의식 때문이다. ‘영국은 백인들의 나라’ 말이다. 백인 아닌 사람들은 ‘타자(他者)’일 뿐이니 차별 또는 배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논란이 커지자 이 전 대표가 “언어 능숙치를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게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요한의 한국어’ ‘이준석의 영어’ 능숙치를 감안하면 이 전 대표가 한국어를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있어 보이게 말했지만 본질은 명백하다. 인요한의 혁신을 비난하기 위해 인 위원장이 미국계임을 동원한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인종주의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 행사장에서 누군가 “한국놈도 아니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고 외쳤다던데, 그것의 ‘고급 버전’일 뿐이다.
우려스러운 건 또 있다. 이 전 대표의 행태가 주로 인성을 드러내는 케이스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영어로 말한 게 뭐가 문제냐” “백인인데 무슨 인종차별이냐”라고 두둔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혐오하는 민주주의』에서 “정치 양극화의 심화와 팬덤정치 현상의 본격적인 등장 과정에서 ‘야심가형’ 인물들이 대중의 의지와 열정을 자신에게 최대 동원하려는 욕구를 숨기지 않았는데, 이때 등장한 두 특별한 인물형이 이재명과 이준석”이라며 “이준석은 한국 정치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를 혐오와 적대의 위험한 도구로 활용하는 대표적 인물의 하나”라고 했다.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2세는 마클의 주장에 이렇게 말했다. “제기된 문제, 특히 인종 문제는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일부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가족끼리 비공개로 다룰 것이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건데, 우린 도통 인정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