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9억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사기범을 두고 전 국민이 웃고 떠들며, 그의 ‘I am’ 화법까지 흉내 내는데, 국제 무대에서 수많은 메달을 따낸 자신에겐 한없이 가혹하니 말이다. 전청조는 완전히 가짜지만, 남현희는 피·땀·눈물로 메달을 따낸 진짜 국대 아닌가.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SNS의 허세 때문이란 일타 강사의 주장이 공감을 일으키는 사회에서, 남씨에 대한 비난이 역설적이란 생각도 든다. 사기꾼이 사기 친 돈으로 사준 명품을 자랑한 것은 문제겠으나, 남씨의 허영심 그 자체를 지적하며 고소해 하는 목소리도 상당해서다. 남씨가 공유한 사진과 비슷한 명품 사진은 SNS를 조금만 검색해도 수천, 수만장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랑인 듯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좋아요’와 팔로워를 늘리며 사는 것이 대한민국의 일상 풍경 아니었나.
‘전청조·남현희 사태’와 같은 사건이 한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넷플릭스는 자신을 수백억 상속녀라 속이고 특급호텔에서 무전 취식하며 미국 사교계를 뒤흔든 애나 소로킨이란 여성의 이야기를 드라마(‘애나 만들기’)로 만들었다. 정체가 드러나 감옥에 갔지만, 소로킨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허세 가득한 SNS에 사람들은 그를 진짜라 여기며 열광했고 돈을 빌려줬다. ‘애나 만들기’에서 검사 캐서린은 “오늘날 미국의 문제점이 모조리 담긴 사건”이라며 소로킨을 단죄하려 한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월세 2000만원 레지던스에 살았던 전씨의 사기와 남씨의 허영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러 문제점을 압축한 하나의 현상처럼 느껴진다. 사는 곳과 먹고 타는, 오로지 드러나는 것으로만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는 현실. 종종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속살이 두 사람 덕에 벗겨진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