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장관은 4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아랍에미리트(UAE)ㆍ사우디아라비아ㆍ요르단ㆍ이집트 외무장관 및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 등과 만났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인명 피해 확산 등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견만 재확인한 꼴이 됐다.
블링컨 장관은 이들과의 회의 이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휴전에는 반대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지금 휴전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전열을 정비해 10월 7일 했던 일(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반복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우리의 견해”라면서다.
반면 아랍국들은 한목소리로 ‘즉시 휴전’을 촉구했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랍국가들의 ‘감정의 깊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집트 사메 수크리 외무장관은 ‘가자지구 내 조건 없는 즉각적 휴전’을 촉구했으며 요르단의 아이만 사파디 외무장관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광기를 멈추라”고 직격했다. 사파디 장관은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희생을 두고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거론하며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민간인 희생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이 가장 어두워 보이지만 우리는 우리 일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과 암만에서 별도로 만난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임시 총리 역시 이스라엘 주변 아랍국과 마찬가지로 가자지구 휴전과 함께 레바논 남부를 향한 이스라엘 공세의 중단을 요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교전 일시 중단 요구 ‘거절’
한편 블링컨 장관이 네타냐후 총리와의 면담 뒤 반(反)네타냐후 세력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를 만나 그 배경이 주목된다. 미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 제1야당 ‘예시아티드’(미래가 있다)를 이끌고 있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3일 회동했다. 라피드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 전임자로 지난해 7~12월 총리로 있었으며, 네타냐후 총리가 밀어붙인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강하게 반대해 왔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보좌진과 논의했다는 보도(폴리티코)가 지난 1일 나온 가운데 블링컨 장관이 네타냐후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는 제1야당 대표를 만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 국무부는 다만 “블링컨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국제인도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데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했다”며 기존 입장 표명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