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례로 EUV 노광 기술이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극자외선(EUV) 광원으로 회로 패턴을 웨이퍼에 형성하는 기술이다. 5000억원이 넘는 최신 EUV 노광 장비는 정말 극한기술이다. 이 장비는 한 시간에 200장 이상의 300㎜ 웨이퍼에 칩 사진 수백 개를 순식간에 찍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고 흔히 말하는데, ‘한 치’는 약 3㎝다. EUV 노광 장비는 약 30nm 오차 내에서 움직여야 하니, 한치의 100만분의 1 정도 오차만 허용한다. 사진을 찍고 다시 움직일 때의 가속도는 전투기의 가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EUV 기술은 수년 전 상용화 직전까지도 대부분 반도체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반도체 축소 기술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인류의 상상력이 다시 도전받고 있다.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기술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간 경쟁의 심화로 미래 반도체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가 모호해지면서 상상력의 한계치가 좁아진 탓이다.
하늘이 한계다(The sky is the limit)를 달리 표현하면 “상상력이 한계다”이다. 상상력의 한계치를 넓힌 사례를 보자. EUV 노광장비 수입이 금지된 중국에서는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EUV 노광기술을 대신하려 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3년 전 풍문 수준을 넘어 이젠 얘기가 구체적이다. 실현 여부를 떠나서 이런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단순 미세화를 넘어 칩과 칩을 이어 붙이는 ‘이종 집적 시대’에는 투입 자원의 총량이 아니라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할지 생각하는 상상력에 의해 기술패권의 향방이 결정된다.
10년 후, 20년 후 미래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미리 투입할 용기와 의지가 있느냐가 반도체 강국을 결정할 것이다. 경쟁국들은 이미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