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10곳 중 4곳, 번 돈으로 이자도 허덕

중앙일보

입력 2023.10.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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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 여파에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42.3%)은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취약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기업 비중은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경영난에 빚을 낸 기업이 늘면서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도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재민 기자

25일 한국은행이 지난해 국내 비금융 기업 91만여 곳의 경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5%로 하락했다. 이는 기업이 얼마나 잘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았을 때 45원의 이익을 남겼다는 뜻이다. 1년 전(5.6%)보다 1.1%포인트나 줄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4.2%)보다는 소폭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42.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면 한 해 수입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취약기업이란 의미다. 이 비중은 2017년 32.3%에서 2020년 40.9%로 뛰었다가 2021년에는 40.5%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후 지난해 내내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비·투자가 위축됐고, 그 결과 취약기업 비중도 다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취약기업의 대부분(34.7%)은 영업적자로 이자보상비율이 0% 미만이었다.
 
전체 기업의 이자보상비율 역시 348.6%로 2021년(487.9%) 대비 하락했다. 다만 이자보상비율 100% 이상인 기업 비중은 늘었다. 100~300% 기업과 300~500% 기업 비중이 각각 16.3%, 7.2%로 2021년(14.2%, 7.1%) 대비 증가했다. 이성환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상이면 우량한 기업으로 볼 수 있다”며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비용이 증가하는 가운데 좋은 기업은 더 좋아지고 나쁜 기업은 더 나빠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상승했다. 각각 122.3%, 31.3%로 2015년(128.4%, 31.4%) 이후 최고치다. 차입금 의존도란 기업 자산(자본+부채) 중 은행 등 외부에서 조달한 차입금 비중을 의미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 등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서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소비자는 지갑을 더 닫고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1로 9월(99.7)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7월 103.2까지 오른 이후 석 달 연속 하락세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4%로 지난 2월(0.1%포인트 상승) 이후 8개월 만에 반등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영향으로 국제 유가 오름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10월에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된 것들이 있었고, 농산물 등 가격도 올라 물가가 계속 오른다고 보는 응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개월 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18에서 128로 한 달 사이 10포인트나 올랐다. 지난 1월(13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상승 폭 역시 지난 2021년 3월(10포인트)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크다. 황 팀장은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고 장기 국고채 금리도 상승하면서, (소비자가) 당분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할 것으로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