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년 남성이 힘차게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서 땀을 흘렸다. 팔과 다리의 근육이 탄탄해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는 이 남성은 시각장애인 박종호(53)씨다.
박씨는 1996년 시야가 흐릿해져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희귀난치병인 베체트병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입안이 자주 헐거나 종기가 자주 났는데 전조 증상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더니 베체트병이라고 했다"고 했다.
집에만 있던 그는 아내 추민주(54)씨에게 부탁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도 힘들었지만 반 년 동안 계속하자 조금씩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곳부터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혀 부딪히고 넘어져도 건강해지는 걸 느끼니 운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스포츠에 빠져든 건 40대가 되어서부터였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로 볼링장에서 기사 일을 하다 아내를 만났던 그는 "시각장애인도 볼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신반의했지만 사실이었다. 체육교실 문을 두드린 그는 볼링, 수영, 알파인 스키, 육상 투척종목, 양궁까지 도전했다. 그는 "아들에게 장애인인 걸 티내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아 아들은 몰랐다"고 했다. 박씨는 수술을 받은 덕분에 한쪽 눈만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상태다.
비장애인에게도 힘든 트라이애슬론을 연습할 만한 곳은 드물었다. 혹시나 부상을 입을까 장애인을 꺼리는 시설도 있다. 여러 곳에서 운동을 하다 올웨이즈 트라이를 알게됐다. 트라이애슬론 1세대로 국가대표까지 지낸 김정호 올웨이즈트라이 대표는 박씨를 반겼다. 실내 사이클, 러닝 훈련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바로 위층에 수영장도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시각장애인 선수들은 가이드가 필요한데, 김 대표가 기꺼이 맡았다.
박씨는 2021년과 지난해 2년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메달보다 더 귀한 건강도 얻었다. 스테로이드제 부작용 때문에 97kg까지 나갔던 체중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86㎏까지 줄었고,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한 뒤엔 80㎏까지 내려갔다.
박씨는 장애인 스포츠강좌이용권의 도움을 받았다.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이 사업은 국민체육진흥기금(70%)과 지방자치단체(30%)가 재원으로 이루어진다. 올해는 116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장애인스포츠강좌이용권은 처음엔 저소득층 12세부터 39세 장애인에게 월 8만원씩 연 최대 6개월 밖에 혜택이 제공되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소득제한 없이 19세부터 64세 장애인이 월 9만5000원씩 연중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제도를 개선했다. 2024년엔 지원연령을 5세~69세로 확대하고, 지원금액도 11만원으로 상향할 계획이다.
박씨는 "트라이애슬론은 보통 매월 30~40만원이 든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스포츠강좌이용권이 큰 힘이 됐다. 이 제도를 주변인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내 추민주씨도 "엄청 좋은 제도"라고 했다.
박씨는 "헬스장 같은 곳은 비용이 싸니까 지원금이 부족하지 않지만, 특수 종목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 좀 더 폭넓고, 상황에 맞는 지원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운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박씨는 "가만히 집에 있기만 하면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든다. 운동은 곧 도전이고 희망이다. 운동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4년도 장애인 스포츠강좌이용권 신청 접수는 다가오는 11월 8일부터 30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신청 및 신청자의 주민등록 관할 시/군/구청 방문신청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