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자기파괴 부르는 ‘생각의 냉전’

중앙일보

입력 2023.10.2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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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퀴즈 하나. 『노트르담의 꼽추』를 남긴 빅토르 위고, 『삼총사』를 쓴 알렉산드르 뒤마, 『올리버 트위스트』의 찰스 디킨스, 이 세 명의 공통점은? 답은 19세기 같은 시간대를 산 최고의 스토리텔러란 것이다. 디킨스는 영국 시민정신으로, 위고는 프랑스 공화파로, 뒤마는 프랑스 왕정복고파로 같은 시대를 다른 관점과 이야기로 들려준다.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1833)과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1853)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동일 인물이 한 나라에선 영웅으로, 상대 나라에서는 악마로 뒤바뀌는 것도 흥미로운 배움이다.
 

행복한 북카페

위고의 『레 미제라블』 원작을 선뜻 읽기엔 길이에 놀라 요약본으로 보면 각 인물의 진실은 자주 왜곡된다. 굳이 거짓말을 만들지 않아도 무언가를 빼고 말한 것만으로 영웅이 악마로, 악마가 영웅으로 뒤바뀔 수 있다.
 
『레 미제라블』 완역본을 읽으면 비로소 모든 사람의 진심과 서로 ‘다른’ 정의를 만날 수 있다. 생각과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처절히 죽이는 피의 시절이었다.


영화나 뮤지컬에서는 혁명의 영웅적인 부분이 강조되지만, 저자는 천재적 성찰을 담아 혁명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지식인의 어리석음과 민중의 이름을 빌린 이익집단 간 충돌의 실체에 대해 말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민중의 실익인데, 실제 혁명은 엄청난 경제 손실을 초래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를 추락하게 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또 그 혁명이 인류를 ‘자유’라는 빛으로 나아가게 했음도 힘주어 말한다.
 
그 시절이 오늘과 많이 닮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 되고, 국가의 발전이나 국민의 실익을 추구하기보다 서로의 발목을 잡고 증오하고 분열한다. 전 세계적 현상인 ‘극한 갈등’은 자기파괴조차 서슴지 않는다.
 
‘생각의 냉전’ 시대다. 띄엄띄엄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무서울 수 있다. 우리는 오늘을 최고의 날로도, 최악의 날로도 만들 수 있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