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반도체 경쟁력을 약화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면, 두고 볼 것인가. 경쟁국들은 당장 투입 가능한 고급인력을 전 세계에서 영입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대만은 3, 4년 전부터 일본 대학과 연계를 확대해 일본 전문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 미국의 한 반도체 기업은 박사초임을 30% 일괄 인상하는 등 고임금을 제시하면서 소프트웨어 분야에 뺏긴 인력을 되찾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으로 외국 고급 인력 흡수를 계속 시도한다.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첫째, 각종 인력양성 프로그램에서 국가지원금을 확보하려는 집단이기주의다. 둘째, 경쟁국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실효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각종 정책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인력 양성만 하면 나머지는 민간 기업이 다 잘 알아서 하겠지’라며 대충 넘어가려는 안일함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은 십만양병설 같은 탁상공론보다 거북선과 화포로 상징되는 경쟁력 있는 선도기술, 민간인을 병력으로 전환하는 의병활동, 의병장이나 이순신 같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 등 혁신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력양성은 당연히 언제나 해야 하는 일상일 뿐이지 정책이 될 수 없으며, 반도체 세계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지금은 ‘반도체 십만양병설’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거북선 같은 초격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잘 정돈된 산·학·연 연계 협력 시스템을 만들 방법과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치밀하고 과감하고 도전적인 반도체기술 개발 전략을 논의할 때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