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출입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텐트를 향해 보안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수 초간 아무 반응이 없던 텐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하단 지퍼가 천천히 열리더니, 10대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방금 잠에서 깬 듯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변명하듯 “자느라…”라고 말하며 텐트 문을 열었다. 보안관은 잠에서 깬 이들을 달래듯 “여기가 야영 공간이 아니라서 그래요. 불미스러운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보안관은 “올려줄까요?”라고 물으면서 시민 대신 직접 텐트 문을 열기도 했다. 인근에서 주로 대여되는 텐트가 외부에서 창문을 여닫을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서다. 여의도 한강공원 노병권 보안관은 “단속을 하다 보면 커플의 애정행각 때문에 민망한 순간도 있다”며 “문을 열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거나 ‘잠시 후에 오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떠서 정리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100만원 이상으로 높게 책정되면서 텐트 단속은 도입 당시부터 논란 대상이었다. 특히 텐트 2면 이상 개방 규정의 경우, 단속반이 돌아다니며 텐트마다 일일이 들여다보고 문 열기를 강제하는 행위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반발도 터져 나왔다.
“지킬 건 지켜야” vs “사생활 침해”
하지만 단속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와 텐트 안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김모(33·남)씨는 “더워서 후드티 속에 러닝셔츠만 입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흉할까 봐 문을 닫고 싶다”며 “문을 열라고 강제하는 건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전모(34·남)씨는 “솔직히 공원에서 키스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걸 국가가 통제하는 건 웃긴 일이다. 그런 논리면 한강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도 다 차 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독일에서 온 마리아(22)는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공원에서 누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독일인 에디(23)는 “커플끼리 스킨십이나 키스를 하는 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문을 억지로 열게 하는 건 사생활 침해 같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을 고려해 서울시는 과태료 부과 등 처벌보다는 계도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단속 시행 이후 과태료 부과 건수는 2019년 1건, 2020년 1건, 2021년 7건, 2022~2023년 0건 등 총 9건에 불과하다. 계도 건수는 2019년 2만 126건으로 가장 많았고, 2020년 1만 5117건, 2021년 1만 5672건, 2022년 1만 1345건, 올해 9월까지 5300여건으로 꾸준히 많은 편이다. 서울시는 올해 146명의 보안관을 텐트 단속 등 야영·취사 단속반에 투입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는 “한강은 원래 서울시 조례에 따라 야영·취사 등 텐트를 설치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는데 ‘그늘막’ 용도로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텐트 개방은 정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해서는 “2면 정도의 개방은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