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 기능을 활용해 ‘홍길동의 계좌에 얼마가 들어있다’ 같은 단순정보가 아니라,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자산이전이 일어나는 ‘조건부 정보’까지 처리할 수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지급·결제 조건에서도 오류나 부정한 대금 수취 위험 등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금융중개기관에 대한 의존이 줄어 결제 수수료가 낮아지고 즉각적인 대금 수령이 가능해진다.
금융의 주역은 정보관리인 역할을 하는 중개인이다. 그는 수수료를 받기까지 신뢰구축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 금융거래정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조건부 처리하게 되면 신뢰비용 절감에 더해 보이스피싱같은 범죄 예방도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토큰 화폐’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올해 7월 발표된 BIS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반 이상이 CBDC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2030년까지 24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CBDC 도입이 예상된다. 지난 4일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테스트의 중심은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와 최종 결제 등에 활용되는 ‘기관용 CBDC’이다.
미래 통화시스템에 대한 비전 없이 통화·결제·금융서비스에서 혁신을 최대한 누릴 수 없다. CBDC는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아니다. CBDC는 새로운 금융시장 인프라로서 사회경제적 구조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키고, 민간 혁신의 장을 열 것이다. 이런 중요한 테스트에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기대된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