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곡이나 해보라기에 드보르자크의 협주곡 1악장을 오케스트라 없이 했죠. 다음에는 쇼스타코비치를 했어요. 지휘자가 바흐를 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물론이라 답한 그는 바흐 무반주 조곡 중 3번을 연주했다. 그 다음에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들려줬다. 지휘자는 2시간쯤 연주를 들었다. “일주일 후 연락이 와서 그다음 여름에 시카고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함께 공연했어요.” 이후 둘은 24년째 지휘자와 첼리스트로 세계 무대에 함께 서고 있다. 그는 에센바흐에 대해 “함께 연주할 때면 누가 젊은이인지 모를 정도로 열린 마음의 거장”이라고 했다.
에센바흐는 피아니스트로 1960년대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조지 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지원을 받으며 지휘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취리히·휴스턴·필라델피아·파리 등에서 오케스트라를 맡으며 정상급 지휘자로 올라섰다. 피아노 연주를 웬만해서는 하지 않았다.
15회 서울국제음악제를 위해 내한한 보호르케즈는 “이중 언어에 대한 경험 때문에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는 페루·우루과이의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어와 스페인어를 쓴다. “두 언어 사이에는 도저히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개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으로는 모든 걸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7세에 첼로를 시작한 그는 언어로서 음악의 매력에 반했다. 11세에 생상스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고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세계와 나를 연결해주는 음악이 내 인생이자 열정 그 자체라 느낀다”고 했다.
그는 첼리스트로서 탐험할 여지가 충분히 많이 남았다고 본다. “다른 악기에 비해 연주할 곡이 적기 때문에 독주자로만 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다른 악기와 함께 하는 인생도 무궁무진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지난 7일 서울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브람스 현악5중주 1·2번을 연주한 그는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를 본능적으로 잡아내고 맞추는 감각적인 실내악 주자였다. 보호르케즈는 10·11일에도 브람스를 주제로 하는 서울국제음악제의 무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