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대학에서 ROTC 정원 미달
의대는 인재 빨아들이는 블랙홀
국가가 부의 배분 방식 고민해야
의대는 인재 빨아들이는 블랙홀
국가가 부의 배분 방식 고민해야
원인은 짐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별로 좋은 게 없어서다. ROTC 출신에 대한 기업의 취업 가산점이 사라졌다. 혜택을 주면 차별로 간주한다. 육군 사병 복무 기간은 18개월인데, ROTC 장교 의무복무 기간은 그보다 8개월이 길다. 현재 병장 월급이 130만원(자산 형성 지원금 포함)이다. 초급 장교 월급은 200만원 중반대다.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후년에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 된다. 군 급여 체계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 병장과 소위 월급의 차가 수십만원 수준으로 준다.
ROTC에서만 장교 수급 차질이 엿보이는 게 아니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서 63명이 자퇴했다. 그중 절반 이상(32명)이 신입생인 1학년 생도였다. 세상의 변화를 상징한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관학교에서 지난 5년간 545명이 스스로 떠났다. 우수한 군 지휘관 확보가 위태롭다. 공식적으론 ‘휴전 중’인, 언제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나라에서 생긴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청년들이 몰리는 곳은 단연 의대다. 학원에 초등 의대 입시반이 생기고, 좋은 대학 공대에 다니다가 의대 진학을 노리고 수능시험 다시 보는 학생이 특이 사례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이한 현상이 속출한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숭고한 길을 택한 인재가 많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정작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분야에는 전공의 지원자가 모자란다. 소아청소년과는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리가 외모 향상에 기여하는 의원으로 대체된다. 의대·한의대·치대가 성적 우수 학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니 공학과 기초과학 은하계가 썰렁해진다.
의대 쏠림은 자유시장에서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의대 정원을 국가가 통제한다. 의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미용 시술에 쓰는 레이저 도구를 들지 못하게 공권력이 막아준다. 의사 고소득을 정부가 보장하는 셈이다. 장교 처우 결정은 온전히 국가 몫이다. 20대가 몰렸던 7·9급 공무원 시험도 경쟁률이 줄었다. 경찰 공무원 쪽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은 고된데 월급은 적어 평균적인 생활조차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자원과 부를 배분하는 공동체의 방식에 선망하는 직업이 좌우된다. 역사적으로 흥한 나라에서 군인에 대한 보상이 박한 적이 없다. 로마 군인은 20년을 복무하면 13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았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 때문에 상속세 제도가 생겼다. 의욕 넘치고 유능한, 거기에 사명감까지 갖춘 젊은이가 무엇을 하게 하느냐에 국가의 성쇠가 걸려 있다.
글 = 이상언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