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에서 또 한편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영화가 개봉했다. ‘의용군:영웅의 출격’. 6·25 종전 70주년을 맞아 ‘패왕별희’로 유명한 천카이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더 집요하게 중국의 참전을 정당화하고 왜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싸워야 했는지 강변한다. 유엔 회의에서 중국 대표는 38선을 넘은 미군을 침략자라 비난하고 마오 주석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개봉 전부터 ‘서사적 걸작’, ‘시공간을 넘어선 교감’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2년 전 같은 시기에 개봉한 ‘장진호’가 12시간 만에 2억 위안(370억원)을 돌파한 데 반해 ‘의용군’은 개봉 첫날 2700만 위안(5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개봉 일주일째였던 지난 5일 ‘의용군’의 누적 수익은 4억3600만 위안으로 같은 기간 ‘장진호’ 30억 위안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연휴 기간 흥행 순위는 경찰 영화 ‘바위처럼 단단해’(7억8000만 위안)와 로맨틱 코미디 ‘엑스:젊은 결혼’(6억 위안)에 밀렸다.
장쯔이, 탕궈창 등 중국 최고 배우들의 등장에도 흥행에 실패한 건 반복되는 서사에 중국인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란 평가다. 한 매체 기사의 댓글에선 “사람이 만든 영화인가?”라는 짧은 문구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중국 영화평론가들도 “기대가 컸지만 관객들은 캐릭터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 같은 느낌만 받았다”, “정치적 성과를 축적하려는 시도로는 흥행할 수 없다”며 배우만 바꾼 선전 영화를 혹평했다.
격세지감이다. ‘장진호’에 흥분했던 중국인들의 분위기는 2년 만에 크게 달라졌다. 외교적, 경제적으로 미국과 충돌을 피하려는 당국의 기류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중국의 모습은 이제 그만 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