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훈의 과학 산책

[김영훈의 과학 산책] 누구나 조금씩은 틀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3.09.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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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2023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트러스트』는 대공황 시기 공매도로 거대한 부를 이룬 한 투자자와 그 아내에 관한 액자소설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아내의 죽음과 이어지는 우울한 삶으로 소설이 끝나나 싶은 순간, 새롭게 등장한 화자의 자서전이 다시 시작된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인데,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이름의 투자자의 삶이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자서전이 미완성으로 끝나고 바로 세 번째와 네 번째 화자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짐작하셨겠지만 이 네 이야기는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한 것으로서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 영화 ‘라쇼몽(羅生門)’과 흡사한 구조다.
 

과학 산책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의 1959년 작 『설산비호』에서는 더 나아가 두 개의 연관된 사건에 관한 여러 사람의 조금씩 왜곡된 진술이 이어지고 이들을 다 듣고 나서야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오염되고 왜곡되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이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저장된 정보를 읽어내거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때도 매 순간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 안전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 방법들을 연구해왔다. 잘 알려진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이 10%의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면, 독립적인 세 명의 진술을 듣고 다수의 의견을 취할 경우 오류 가능성이 3% 이하로 떨어진다. 다섯명의 진술을 모을 수 있다면 오류 가능성을 1%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나 영상을 시청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오류 수정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
 
오류 수정을 일상화해야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주장을 폭넓게 청취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으로 나아가는 동서고금의 지혜인 듯하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