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역대 정부가 지방대 살리기를 위해 쓴 재정 규모다. 12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교육부 집계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22년까지 19년간 14개 사업에서 10조 넘는 돈이 지방대에 투입됐다. 일반적인 대학 지원 사업이 아닌 '지방대 살리기'와 관련된 사업만 집계한 금액이다.
학계에서는 노무현 정부부터 본격화된 지방대 육성 정책이 매 정부마다 반복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지방대는 선호도가 계속 떨어졌고 신입생 미달이 속출하며 존폐 위기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투입 대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지방대에 대한 진료도, 처방도 실패한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새 건물만 덩그러니…“지원금 어디 쓰였는지 몰라”
경남의 한 사립대는 2016년 ‘프라임 사업’ 지원금을 받아 모빌리티·기계공학 등 공학계열 학과를 신설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신입생 모집에 고전하면서 7년만에 정원을 축소하고 뷰티·디자인 학과를 만들기로 했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 수요에 맞게 공학계열 위주로 학과를 개편하는 대학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대학 한곳당 최대 300억원을 주면서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사업’이라 불렸다. 이 사업을 통해 지방대에만 3년간 3708억원이 투입됐다.
부산의 한 대학도 프라임 사업을 통해 만든 학과를 내년부터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게임·그래픽 관련 학과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부산의 한 사립대 교수는 “재정 지원을 받아 만든 학과를 없애면 결국 그 동안 그 학과에 투입된 많은 돈이 다 공중분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교수로서도,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황당한 일”이라고 했다.
지방대 중에는 정부 지원금을 건물 신축이나 리모델링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새 건물이 학교 경쟁력을 높였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북의 한 사립대는 정부 지원금으로 2018년 5층 규모의 강의실, 연구공간 등을 갖춘 건물을 지었다. 스마트자동차, 탄소융합 등 새로운 학과가 사용할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학과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1대 1에도 못 미쳤다. 이 대학의 한 재학생은 “학생이 없는 학과를 만들고, 그 학과를 유지하기 위해 건물을 짓는게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경남의 한 사립대 교수도 “재정 지원을 받아 새로 지은 건물은 번쩍거리며 서 있는데, 학생이 없어 텅 비었다”며 “지나가며 볼 때마다 ‘저 돈이 저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방대 투자, 잼버리 사태 닮았다…지역-대학 협력 부족”
지방대와 지자체의 협업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박철우 한국공학대 교수는 “중앙정부 예산이 대학과 지자체에 각각 개별적으로 지원되다 보니 협력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협업 의지도 없었다”며 “게다가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재정 지원 사업의 이름도 바뀌고, 목적과 평가 방식도 조금씩 달라져 연속성을 갖추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대학이 단기 성과에 급급해 혁신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4년 안팎인 총장 재임 기간 동안 홍보성 플래카드를 몇 개나 걸 수 있느냐가 최우선 과제가 된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체질 개선은 어렵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역대 정부의 지방대 살리기 재정 지원 사업의 목표는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똑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슷한 사업을 매번 하다보니 10조원이 넘는 돈을 써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