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못 뛰었으니까” -‘1947 보스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일제강점기 일본 대표 기타이 손이란 이름으로 출전한 24세 손기정(1912~2002)은 2시간 29분 19초로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그리고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달린 스물 네 살 서윤복(1923~2017)도 1위에 올랐다. 2시간 25분 39초, 손기정의 세계 기록을 11년 만에 경신했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사실이다. 사극에서는 역사가 곧 스포일러라지만, 베를린과 보스턴 사이 11년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이 많다. 1936년 세계 기록을 세우며 시상대에 올랐지만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이고 월계관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하정우)은 승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제는 그에게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해방 후 가장 오랜 마라톤 대회,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서윤복(임시완) 훈련을 맡는다. 베를린 동메달리스트로 함께 시상대에 섰던 남승룡(배성우)이 조력자로 나섰다.
'거미집''1947 보스톤''천박사 퇴마 연구소'…27일 동시 개봉
과장 없는 연기와 고비고비 위기 극복 스토리가 '국뽕' 우려를 잠재웠다. 차곡차곡 쌓은 설움 끝에 그려낸 마라톤 대회 15분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대학 때부터 육상 영화 '불의 전차'를 보고 매력에 빠졌다"는 그가 만든 ‘달리기 영화’다. 12세 관람가. 108분.
“김 감독 현장은 막장에 콩가루야” -‘거미집’
1970년대,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김 감독(송강호)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에 대해 며칠 동안 같은 꿈을 꾸는 참이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는 집착 속에 딱 이틀간의 추가 촬영을 꿈꾼다. 그러나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인 백 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김 감독 현장은 막장에 콩가루”라며 납득 못 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가까스로 모은 현장에서 원로배우(박정숙)는 베테랑 배우(임수정)와 신경전을 벌이고, 떠오르는 스타 배우(정수정)는 바쁜 일정을 들어 도망갈 궁리에 바쁘다.
신중현 작곡, 김추자가 부른 ‘나뭇잎이 떨어져서’,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등 옛 노래들이 70년대 정서를 한껏 부추긴다. 칸 공개 후 “영화 만들기의 본질에 대한 정당하고 감동적인 고찰. 오직 김지운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할리우드 리포터), “예상했던 것보다 코미디의 강도가 더 세서 놀라웠다. 독특한, 유일무이한 작품”(일본 에이가 닷컴)이란 평가를 받았다. 김지운 감독은 “인생이 온갖 아이러니와 고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듯 영화 또한 계속될 것”이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15세 관람가. 132분
“건당 천만 원이어서 천박사라 들었어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조감독 김성식의 첫 연출작이다. 액션ㆍ판타지ㆍ코믹을 버무린 밝고 경쾌한 오컬트물. ‘기생충’의 벙커 부부 이정은ㆍ박명훈의 깨알 같은 오마주도 만날 수 있다. 강동원이 ‘전우치’(2009), ‘검사외전’(2016) 등에서 입증한 코미디 장기로 ‘더 문’의 흥행 참패를 기록한 영화 명가 CJ ENM을 살릴지가 관전 포인트다. 12세 관람가. 98분.
이들보다 한 주 앞선 21일 ‘가문의 영광: 리턴즈’가 출사표를 던진다. 2002년 1편이 나온 코미디 프랜차이즈 ‘가문의 영광’의 6편이다. 1편에 500만명이 웃었지만 11년 전 5편은 116만 관객에 그쳤다. 조직폭력배 집안의 막내 사위 맞이 스토리가 반복되는 가운데 직업은 좀 달라졌다. 1편의 서울대 법대 엘리트 사윗감이 스타 작가로 바뀌었다. 2편부터 가문의 안방마님으로 자리 잡은 김수미는 “작품성 없다. 그냥 코미디다. 그냥 생각 없는 분들 오시라”는 색다른 홍보 멘트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