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 임동식'전(10월 1일까지)이 1일 개막했다. 규모와 내용 면에서 3년 전 전시와 나란히 비교하기 어렵지만, 국내 미술계에서 특별한 궤적을 그려온 작가를 만날 기회다. 1~3관 3개의 전시장에서 회화 40여 점과 드로잉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전관서
'인간과 자연 합일' 추구한 작업
실험미술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
75년 꽃지 해변 퍼포먼스
임동식은 197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한국청년미술작가회' 창립 멤버로 자연 현장 기반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1975년 8월 충남 안면도 꽃지 해변 모래밭에서 벌인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 '1975 여름 안면도 꽃지해변의 기억'이란 제목의 대형 회화로 나왔다. 바로 그 공룡 알 그림이다. 그는 81년 국내 최초 자연미술운동그룹 '야투'(野投·'들로 던진다'는 뜻)를 설립하는 등 자연미술을 지속해왔다.
"예술과 농사가 다르지 않다"
- 3년 전 전시가 호평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이 보지 못했습니다.
- 더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해 아쉽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큽니다. 제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전시가 좋았어요. 앞서 제가 서울시에 자료 1300건(5400여 점)을 기증했는데, 그 자료를 학예사들이 하나하나 분류해 작품과 함께 배치했죠. 환상적인 전시였습니다.
- 서울시에 기증한 자료가 지난 4월 서울 평창동에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임동식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소장됐더군요.
- 회화 중심으로 작업해왔다면 그런 자료가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야외 현장 작업이 많다 보니 작업 구상 드로잉부터 현장 사진, 메모 등 기록물 정리를 일과처럼 해왔습니다. 그게 또 재미있었고요. 드로잉도 회화도 제 작업의 한 갈래입니다.
- 일찌감치 야외에서 퍼포먼스를 많이 하셨는데요.
- 옛날에도 풍경화가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실내 작업실에서 벗어나 야외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죠. 한국에도 실경산수화 전통이 있었고요. 안팎을 따지는 건 두 번째 문제에요. 제게 중요한 것은 ‘미술이라는 것이 도시화한 환경과 틀 안에서만 생산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도 수 세기에 걸쳐 변화하며 발전해온 것이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따라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평생 하는 예술인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내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독일에 남아 작업할 수도 있었죠.
- 게하르트 리히터(91)나 안젤름 키퍼(77) 등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들을 보면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어요. 독일적이면서 리히터적이고, 독일적이면서 키퍼적인 것이죠. 무엇보다 철저히 자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공주 원골에 정착한 이유는요.
- 제 고향은 아니지만, 자연이 좋았어요. 제 작업이 자연 가까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고, 제가 유학한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요. 도시 생활은 충분히 했죠. 새가 우짖고 초목이 자라고 자연과 함께하는 동네 분들이 있는 곳이 제겐 더 새로운 곳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 얘기를 들려줬다. "원골로 가면서 전 서양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우리 입맛에 제일 잘 맞는 된장도 서양 사람들이 처음 먹어보면 그 맛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죠. 입맛도, 보는 것도 세계가 보편타당하게 통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서양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도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 받아 작업했어요.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각자 자기 고유의 것을 찾아 표현해야죠.
- 자연 깊숙이 들어가 세상에서 잊힌다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게 나를 알릴 에너지와 작업할 것과 그 내용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웃음). 수도하는 스님은 보살님이 나를 알아보는가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갑니다.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불안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치는 세상에 내 작업이 고요한 힘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면 그것을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