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계에선 ‘바벤하이머(Barbenheimer)’의 여파가 컸다고 말한다. 지난 7월 21일 미국에서 동시 개봉한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함께 흥행하자 두 영화의 타이틀을 조합한 ‘바벤하이머’란 말이 만들어졌고, 소셜미디어(SNS)엔 두 작품의 이미지를 합친 ‘밈’이 퍼져나갔다. 그 중 바비의 머리에 원폭 이미지를 얹은 합성 사진에 ‘바비’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공식 계정이 유머러스한 댓글을 남긴 게 문제가 됐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폭 피해를 본 나라. “원폭을 농담의 소재로 삼다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아는가” 등의 반발이 나왔다. 결국 워너브러더스는 “배려가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9월 1일은 간토(關東)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며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인에 의해 참혹히 살해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폭동에 주의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학살을 부추겼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 자료가 없다”며 명백한 사실을 외면한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같은 이는 “무엇이 사실인지는 역사가가 밝힐 것”이라며 사실상 학살을 부정하고 나섰다.
‘오펜하이머’가 일본에서 개봉하길 바란다. 영화가 원폭 피해자의 고통을 얼마나 표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영화를 본 후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피해자’ 일본은 더없이 안쓰러우면서 ‘가해자’ 일본은 그저 잊으려고만 하는 건 아닌지. ‘원폭구름 머리 바비’가 일본인에게 상처였다면, 휘날리는 욱일기 역시 아시아의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