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관람객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총 2권으로 이뤄진 두루마리 그림. 간토대지진 당시의 참상을 증언과 당시 기록물을 기반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일반에 첫 공개됐다. 폭 36㎝의 종이에 2권으로 나눠 그려진 그림은 길이가 32m에 달하는 대작이다.
초등학교 교사의 100년 전 기록
특별한 기대 없이 낙찰 받은 그림을 펼쳐본 아라이 전 관장은 깜짝 놀랐다. 1권 말미 조선인 학살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장면과 조우한 그는 화가를 수소문했다. 조선인 학살을 담은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어떻게, 그리고 또 왜, 이 그림이 그려졌는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려진 연대는 간토대지진(1923년 9월1일)으로부터 3년 뒤인 1926년. 그림엔 ‘기코쿠(淇谷)’란 이름이 남아있었다. 작가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던 박물관 사람들에게 지난해 희소식이 찾아왔다. 일본 국회도서관 검색 중 기코쿠란 필명의 화가를 찾은 것이다.
기코쿠는 1862년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오하라 야이치이(大原弥市)였다. 퇴직을 앞둔 무렵, 그는 간토대지진 참상을 조사하고 자료를 모아 그림을 그렸다. 그의 나이 63세의 일이었다.
40여년 동안 교단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쳐온 그는 퇴직 후 2년이란 시간을 간토대지진의 참상을 기록하는 데 쏟아부었다. 오하라는 서문에 ‘이러한 참화를 조우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 이로써 반성의 마음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을 남겼다.
두루말이에 남긴 조선인 학살
조선인 학살 장면은 1권 말미에 등장한다. 손에 곤봉·죽창을 든 자경단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조선인들을 뒤쫓는다. 학생 모자를 쓴 청년도 도망치다 칼에 찔렸는지 어깨부터 팔까지 선혈이 낭자하다. 무장한 군인과 자경단에 쫓기는 조선인들 뒤엔 산처럼 쌓여있는 주검들이 그려져있다.
고려박물관의 토다 미쓰코(戸田光子) 이사는 기자에 “일본 정부는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않고 있지만 많은 정부의 공식 문서와 기록을 통해 학살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기록된 공적 문서에서 '학살'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했다.
그는 “최근 일본 교과서에서도 학살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일본이 한국에 한 일은 한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負)의 역사를 직면해 실제 일어났던 일을 아는 것부터가 새로운 한일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정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