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8월 국방부의 첫 업무보고에서 국군의 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문 전 대통령이 “광복군,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을 육사 교육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라”, “10월 1일인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는 방안을 마련하라” 등 두 가지를 지시하면서다. 보고에는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배석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복수의 청와대 인사들은 특히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정통성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국군의 날은 6ㆍ25 전쟁 당시 국군이 처음으로 3ㆍ8선을 돌파한 날(1950년 10월1일)로 지정했다. 동시에 한ㆍ미동맹의 근간인 한ㆍ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1953년 10월1일)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에 ‘국군의날 변경 결의안’을 제출하고(2017년 9월), 국방부는 “독립군과 광복군 관련 연구를 통한 국군의 역사적 뿌리 재정립과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운동사 발굴”을 강조하는 등(2018년 1월 업무보고) 당·정·청이 일체가 돼 속전속결로 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됐다.
특히 국군의 뿌리로 김원봉을 내세우는 ‘작업’은 청와대가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설치한 혁신위원회가 맡았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혁신위원회의 2018년 11월 의결 권고안 모음집에는 “2019년 3ㆍ1절 100주년에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히 포상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해야 한다”고 돼 있다. 혁신위는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진보 인사 10여명으로 구성됐다.
해당 논의에 참여했던 인사는 “당시 정부는 한국군의 정체성에서 한·미 동맹 색깔을 옅게 하고, 친북 인사로 정체성을 바꿔야 향후 남북 대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와대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을 원했던 이유는 이를 통해 김원봉의 ‘김일성 낙인’을 먼저 없애야 그가 활약한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당시 회의록에는 김원봉을 서훈 대상으로 특정하면서 “남북 대화로 ‘누구를 기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필요하다”거나 “유공자 발굴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등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보는 대목이 수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김원봉 서훈 시도가 반대 여론에 부딪치자 청와대는 홍범도 장군 띄우기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시점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 완료' 시점으로 제시했던 3·1절이 막 지난 2019년 4월이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돌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직접 김원봉을 언급하며 마지막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가 거세자 나흘 뒤 청와대는 “(김원봉)서훈은 불가능하고, 관련 조항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물러섰다.
이후 청와대는 '플랜B'에 해당하는 '홍범도 부각하기'로 목표를 변경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청와대는 이듬해인 2020년 3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을 추진하려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산됐고, 2021년 8월 광복절에 맞춰 대대적인 유해 송환 행사를 진행했다. 유해 송환을 위해 군 특별수송기(KC-330)가 투입됐고, 공군 전투기 6대가 호위 비행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파악하고, 문재인 정부가 치밀하게 몇 년에 걸쳐 국군의 정체성을 사실상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흉상 이전이 단순한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전·현 정부 간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며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흉상 이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이 ‘이념과 철학’을 강조하며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봐야 한다’고 지시한 것은 이번 사안을 타협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대통령실이 이번 사안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정체성과 원칙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논란이 되자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글에 적은 그대로 이해해달라”며 구체적 언급이나 입장 표명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