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이력 조회 사이트 ‘더치트’, 신종 추심 창구로 악용돼
원금·법정이자 갚아도 집요하게 추심… 더치트에 올려 협박
수법은 이렇다. 불법 사채업자는 인터넷 광고를 통해 30만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원을 받는 일명 ‘30·50’ 대출을 홍보한다.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3466%에 달하는 연 이자율이 함정이다. 10만~20만원이 아쉬워 상환을 연장하면 그때부터 불과 몇 개월 만에 연체료와 연장비 등을 사유로 수백만원의 채무를 지게 된다. 이를 빌미로 불법 사채업자들은 채무자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더치트에 올리겠다”며 협박하고 이를 무시하면 채무자의 신원을 더치트에 실제 등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출은 법정 최고이율(연 20%)을 넘긴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원금을 갚았다면 그 이상은 줄 필요가 없다. 연 20%를 넘긴 이자도 무효다. 문제는 추심이다. 과거에는 폭언과 폭행을 통해 이뤄지던 추심이 지금은 채무자를 사기범으로 둔갑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제보자들은 불법 사채업자에게 원금의 배에 달하는 돈을 갚고도 사생활에서 2차 피해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는 남성 박모(30)씨 사례다. 그는 지병인 희귀 난치질환으로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자 지난해 9월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렸다. 한 달 동안 50만원씩 4차례 빌렸는데, 어느새 갚아야 할 돈은 32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박씨는 원금까지는 갚았지만 업자는 두 달이 넘도록 이자를 내라고 연락해왔다. 박씨는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넘긴 지인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대신 갚으라고 하겠다, 여자친구를 조건만남(성매매) 하는 여자로 트위터에 홍보하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다 들었다”며 “심지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당신을 더치트에 사기꾼으로 올리겠다고 조롱하기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업자는 박씨의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더치트에 올렸다고 한다. 화폐 거래에서 피해를 봤다는 사유를 내세웠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번역회사에서 일하는 김모(32)씨도 비슷한 사례다. 김씨는 급전이 필요해 지난 4월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소액을 빌렸다가 원금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을 갚았지만 업자가 협박과 폭언을 해대며 추가 상환을 요구하자 연락을 차단했다고 한다. 그러자 같은 달 더치트에서 김씨의 계좌로 사기 의심 사례가 접수됐다면서 알림 문자가 왔다. 김씨는 “통장은 다른 은행에서 새로 만들면 된다고 하더라도 카카오페이를 쓸 때조차 상대에게 내 계좌가 사기에 이용됐다는 알림이 떠서 처지가 곤란해졌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불법 추심으로 이자를 갚다가 이혼까지 하고 모두 잊고 지냈는데, 뒤늦게 자신의 계좌가 사기에 이용됐다는 알림을 받고 놀랐다는 제보자도 있었다.
급전 필요해 불법 사채 거래한 뒤 날벼락
과거 불법 사채업에 종사했던 이모(28)씨는 신종 더치트 사례와 관련해 “추심은 아무래도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터라 너무 세게 나가면 경찰에 잡힐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채무자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만들어 범행에 가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채무자의 입을 닫게 했는데, 지금은 사채업자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불법 사채업자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비대면으로 채무자와 소통하는데, 차용증 말미에 ‘상환하지 못하면 더치트에 이름이 올라가도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쓰게 하고 셀카로 촬영한 사진도 받아내기도 한다. 이후에는 “돈을 갚아야 더치트에서 내려주겠다”며 채무자들을 조롱하고, 이런 차용증 이미지를 더치트에 첨부해서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았다며 등록한다고 한다.
불법 사채업자의 이러한 행태는 범죄가 아닐까? 천호성(38·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변호사는 “서명한 차용증 자체는 법적인 효력이 있다. 하지만 원금과 법정 이자를 초과하는 돈을 요구하고, 이를 상환하지 않으면 사적으로 피해를 주겠다는 것은 공갈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치트 사이트를 악용하는 이러한 신종 행태와 관련해 채무자들은 더치트 운영사의 대응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몇몇 피해자들은 “사기 의심 거래자로 등록돼서 더치트 측에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상환 내역까지 보냈지만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씨는 자신의 계좌가 등록된 것을 인지한 뒤 더치트에 문의해 사정을 설명하고 원금 상환 내역을 첨부해 삭제 요청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치트 관계자가 “당사자와 얘기해보라”며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한모(40)씨도 “신고 당사자가 불법 사채업자이고 허위로 신고한 건데, 더치트 측은 이를 중재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더치트 “원금 상환 확인되면 바로 조치”
이와 관련, 더치트 운영사는 불법 사채업자와 관련된 채무자의 정보가 사기 의심 사례로 등록되는 사례를 인지하고 있으며 계속 모니터링 중이라는 입장이다. 김화랑 더치트 대표는 월간중앙에 “우리 직원이 채무자에게 ‘신고 당사자와 얘기하라’고 말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신고자가 불법 사채업자인지는 저희가 따로 확인할 수 없고 모든 사건에 다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원금 상환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 다만 원금을 갚았다고 증빙하면 피해 사례는 전부 비공개를 하거나 삭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증빙 자료를 첨부했음에도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사례를 제시하다 김 대표는 “사기 신고와 삭제 요청이 반복되는 일이 많다. 등록자 입장에서는 ‘나는 돈을 못 받았는데 왜 피해 사례를 비공개하느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피등록자 입장에서는 ‘왜 빨리 안 지워주느냐’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신종 추심 행태인 더치트 악용 사례와 관련해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불법 사채의 살인적인 이자에 돈을 뜯긴 채무자들이 사기계좌, 사기번호로 등록되는 2차 피해를 보고 있다”며 “더치트와 같은 공익적인 사이트가 사기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해가 있을 때는 신속히 사실관계를 확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