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시인은 시의 내용에 등을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노력은 시인이 남긴 숱한 메타시(시에 대한 시)를 통해 빼곡하게 드러난다. 특히 서정을 믿지 않았고, 시의 전통이라 믿어온 것에 대하여 그 허구성을 짚어내는 글을 자주 남겼다. 이승훈은 이 세계에 가시적으로 대두되어 인류가 추구해온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공허함을 피력했다. 어쩌면 공허함 자체를 탐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의 목적은 목적을 없애는 것이다’라 했던 그의 선언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시는 언어를 질료로 하는데, 언어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성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불가능성을 목적으로 두는 일. 이것이 시의 본성임을 시인은 믿었고, 그 믿음을 추구했다. 이승훈은 한국 시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목적에 다다르지 않았고 또한 완성을 추구하지 않았던 시인이었다. 무목적과 비완성-미완성이 아니다-이 그의 시정신이었다. 온전한 놀이로서의 시. 시의 욕망이 얼마만큼 순수해야 하는지, 이승훈의 시편을 다시 읽을 때마다 환기되고는 한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