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9단이 중앙일보에 보낸 출사표다. 신진서는 좀처럼 인터뷰를 피하지 않는 기사다. 응씨배 첫 결승전을 앞두고서는 달랐다. 언론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기원을 통해 각오라도 밝혀달라 했더니 ‘사활(死活)’ 두 글자를 보내왔다. 죽기와 살기. “목숨을 걸고 둔다”는 출사표는 원래 조치훈 9단의 것이다. 휠체어 대국도 불사했던 전설의 승부사처럼 신진서도 천하의 승부를 앞두고 목숨을 말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바둑 대회 ‘응씨배(응창기배. 중국어 표기를 따르면 ‘잉창치배’. 여기에선 한국기원의 대회 표기를 따름)’ 제9회 결승 3번기 1국이 21일 오전 11시30분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한다. 한국의 신진서 9단이 중국 셰커 9단과 세계 최강자 자리를 놓고 백척간두의 승부를 겨룬다.
역대 응씨배는 모두 8명의 챔피언을 배출했다. 특히 한국 바둑은 1회부터 4회까지 16년 내리 우승컵을 독점했다. 1회 조훈현, 2회 서봉수, 3회 유창혁, 4회 이창호. 한 시절 ‘사천왕’으로 불렸던 한국 바둑의 고수들이 차례로 응씨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인 챔피언은 사천왕에 이어 2009년 6회 대회에서 우승한 최철한 9단까지 모두 5명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예정대로였으면 제9회 응씨배 우승자는 3년 전 가을에 나왔어야 했다. 코로나 사태가 대회 일정을 가로막았다. 준결승전까지는 온라인 대국으로 치렀지만, 주최 측이 결승전만큼은 대면 대국을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렇게 하세월을 기다리다 2023년 8월 하순에야 결승전이 열리게 됐다.
신진서와 셰커는 공식 대국에서 딱 한 번 부딪힌 적이 있다. 2017년 리민배 세계 신예 바둑 최강전 16강에서 만났는데, 셰커가 이겼다. 하지만 이 기록은 크게 신경 쓸 게 못 된다. 워낙 오래전 기록이기도 하거니와 박정상 9단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에게 응씨배 결승 결과를 예측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2연승”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이 14년 만에 응씨배 우승컵을 되찾아올 것인가. 마침내 신진서는 세계 바둑 패왕에 등극할 것인가. 바둑 팬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