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70년대 통일벼 개발을 통해 주곡인 쌀의 자급을 이루었다. 이전까지 ㏊당 3t을 조금 넘던 쌀 생산량이 통일벼의 보급으로 1977년 약 5t으로 높아져 자급 기준인 4000만석(약 600만t)을 달성한 것이다. 광복 이후 30년간 외국쌀에 의존하던 것에도 자유로워졌다. 이후에도 수량을 높이는 품종을 꾸준히 개발하여 ㏊당 6.3t의 수량을 내는 자포니카형 ‘남찬’, 무려 8.2t의 수량을 낼 수 있는 통일형 ‘금강1호’ 품종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국민 식생활 변화, 기후변화 대응, 지역 맞춤형 등 다양한 수요에 맞춰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오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바로미2’는 물에 불리지 않고 쉽게 빻아 밀가루처럼 사용할 수 있는 가루쌀 품종이다. 가루쌀은 밀가루 수입을 대체하고, 식량 생산의 기반인 논을 유지하면서도 쌀 과잉생산과 밀 수급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이앙시기가 6월 말부터 7월 초로 일반벼보다 늦은 가루쌀은 밀, 보리 등 겨울 작물들과 이모작에도 매우 유리하므로 농지이용 효율과 식량자급률을 함께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증가하는 가공용 쌀 수요에 맞도록 ‘미르찰’ ‘미호’ 등 산업체 맞춤형 품종을 개발하고 있고, 메탄가스와 비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밀양360호’ 등 저탄소 품종도 한창 개발 중이다. 오랜 기간 일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일본 품종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는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해들’과 ‘알찬미’ 품종으로 대체되었다. 이 품종들은 밥맛이 뛰어나고 병해충 저항성과 수량성까지 우수해 ‘최고품질쌀’로 인정받았다.
최근 세계 1위의 쌀 수출국 인도가 쌀 수출을 제한한다고 발표한 직후 국제 쌀값과 곡물 가격이 출렁였다. 국제정세의 불안정과 더불어 극한의 폭우, 폭염처럼 요즘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변화는 안정적인 식량 수급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도 빠르게 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주식으로 삼아온 쌀이 열대성 작물로 고온다습한 환경에 적응력이 높다는 점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량은 줄었지만 쌀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주식이다. 그 나라의 생태와 문화에 적합한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식량주권은 국방, 외교에 못지않게 국가의 존립과 경쟁력에 필수요건이다. 농업에 불리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지만 그동안 쌓아온 품종과 재배기술 개발 역량이 집약된 우리의 쌀은 식량주권의 핵심 품목으로 그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