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학력고사 시절만 해도 고등학교에서 많은 과목을 ‘선택 없이 모두’ 배웠다. 국·영·수뿐 아니라 세계사·정치경제·생물·지구과학·화학·물리 등을 다 배우고, 입시에선 모든 과목을 치렀다. 지금은 국·영·수가 핵심이고 사탐·과탐 중 두 과목 선택으로 수능을 보니, 아예 배워본 적이 없는 과목도 많다.
기초교양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liberal arts’다. 노예가 아닌 ‘자유시민의 소양 교육’이란 의미다. 동서고금 인류문명 역사에서 ‘배운다’는 건 상위 0.1%만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국민이 배울 수 있는 권리는 빌헬름 폰 훔볼트, 존 스튜어트 밀 등 많은 선각자의 헌신에 빚을 지고 있다. 사회개혁은 오직 시민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그 교육은 직업인 양성이 아닌 교양이어야 한다는 통찰이었다.
총명한 20·30대가 “문과라서 과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이과라서 세계사를 못 배웠어요”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지식의 절름발이다. 언젠가 들어본 풍월이 어디서 꽃필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배울 권리를 돌려주면 어떨까. 얇고 넓게 세상 이치를 모두 맛보는 선물. 입시에 국영수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과목을 넣어 학교에서 배우게 한다면 덜 지루해할 학생과 이를 보는 학부모는 싫어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교육 시장은 싫어하겠지만.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