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에서 수레를 끌던 곽씨는 5분 간격으로 휴식을 취했다. 숨을 한참 고르던 곽씨에게 자영업자 장주영(39)씨가 다가와 생수 2병을 건넸다. 장씨는 “가게에 오는 폐지 수거 노인들이 쓰러질까 봐 걱정돼 생수, 빵, 박카스 등을 항상 구비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1시간 반 뒤 다시 고물상에 도착한 곽씨의 수레에 쌓인 폐지와 고철은 그의 키보다 높았다. 걸음 수는 7532보였다. 265㎏ 어치를 고물상에 팔고 현금 1만원을 손에 쥔 곽씨는 “누가 월세, 생활비 대신 내주는 것도 아니니 먹고 살려면 나와야 한다”면서 “더워서 죽으면 죽는 것이고 다 하느님 뜻에 달렸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 야외에서 일하는 노인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만성질환자가 많아 면역력이 낮고 땀 배출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은 더위에 특히 취약하다. 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 이후 온열질환자는 누적 1385명이며 추정 사망자는 18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중 65세 이상 노인이 13명이다. 발생 장소는 실외 작업장(31.9%)이 1위였다. 2일 광주에서 폐지를 줍다 쓰러진 A(67·여)씨의 사망 당시 체온은 41.5도였다.
일부 노인들은 지자체가 지원하는 무더위쉼터에서 더위를 견디기도 한다. 이날 오후 2시쯤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화촌경로당에선 70~90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고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튼 내부 온도는 26도로 쾌적했다. 정태순(94)씨는 “집에서 할 것도 없고 여기서 시원하게 보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노인들은 “먹고 살아야 하는데 덥다고 쉴 순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65~79세 고령층의 고용률은 45.2%로 노인 절반 가까이가 계속 일하고 있다. 통계청이 26일 발간한 ‘통계플러스 여름호’에 따르면 2019년 66세 이상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은 43.2%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역 앞에서 이동식 좌판을 펴고 바퀴벌레 퇴치제 등을 판매하는 송모(75)씨도 “폭염 탓에 어지럼증을 느끼지만 기초연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긴 어렵다”며 “집에 에어컨이 있긴 한데 요금이 부담돼 켜질 않는다”고 말했다. 까치산시장의 한 야채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는 박상재(67)씨도 “과거 화물차 운전 일을 하다 은퇴했는데 모아둔 돈도 별로 없고 병원비가 부담돼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날씨가 더워 피부가 새빨갛게 익었다”는 박씨는 배달 늦겠다며 서둘러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