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54)씨는 최근 동네 마트에 갔다가 장바구니를 텅 비운 채 발길을 돌렸다. 2000원 언저리였던 상추 한 봉지(200g) 가격이 4980원까지 올랐다. 상추 대신 깻잎을 집을까 고민했지만, 역시 평소보다 1500원 더 비싸진 가격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김씨는 “물가가 잡혔다고 하는데 체감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7월 두 달 연속 2%대(전년 동기 대비)로 둔화했지만, 일상 속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폭우에 이어 폭염 직격탄을 맞은 탓에 농축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ℓ당 1700원대를 향해 치솟는 휘발유 가격도 체감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장마철 집중 호우에 이어 폭염까지 이어진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일까지 가축 15만3000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35도 안팎의 무더위가 당분간 이어지는 만큼 가축 추가 폐사를 비롯해 농작물 수량 감소·품질 저하 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6~7월에 쏟아진 비로 6만1000ha 이상의 농작물이 피해를 겪었고, 닭·오리 등 가축 약 100만 마리가 폐사했다(2일 기준).
휘발유·경유 가격 오름세도 가파르다. 국제 유가 상승 여파로 이번 주까지 4주 연속 상승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류 물가가 1년 전보다 25.9% 하락하면서 소비자물가 안정을 주도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향후 폭염 등 기후 영향에 추석 수요 등이 더해져 체감 물가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안정세를 보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이달 이후 반등해 연말에는 3%대로 오를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전망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향후 국제 유가 추이, 기상 여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여름 배추 재배 면적 확대를 추진하고, 과수 피해 방지용 약제 지원에 나서는 등 폭염 발(發) 물가 불안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제일 신경 쓰는 게 먹거리와 휘발유 가격이다. 이들 가격이 몇 주 새 올랐기 때문에 체감 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라며 “당분간 물가는 폭염 등 날씨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