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발생해 14명의 사망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후 김영환 충북지사 책임론이 제기되자 국민의힘 충북도당은 “더불어민주당은 도정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현수막을 충북 지역 곳곳에 내걸었다. “슬픔에 잠긴 도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정쟁만 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 현수막이 넘쳐나고 있다. 내용은 혐오와 비방 위주다. 가짜뉴스에 편승하거나 인신공격성 문구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이나 정당 정책이 담긴 현수막은 개수·문구 제한 없이 달 수 있다. ‘자유로운 정당활동을 보장한다’는 법 개정 취지 때문이다. ‘현수막 홍수’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스쿨존 부착 금지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문구 제한 규정은 없다. 지자체 선관위가 사안별로 관여하지만, 일관된 규정이 없어 “잣대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야 지도부가 현수막을 직접 챙기면서 ‘막말 현수막’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양 극단의 정치 상황이 현수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거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현수막 문구를 당 사무국과 수시로 상의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현수막 게시 현황을 각 지역위원회에서 보고받았다. 야권 관계자는 “중앙당에서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을 만들어 게시하라고 해서 지역위원장이 외려 잘 안 보이는 외진 곳에 걸었다”고 했다.
정당 현수막의 제작과 철거에는 세금이 투입된다. 정치자금법 28조에 따르면 국고보조금은 홍보용 선전비로 쓸 수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매년 수백억 원대 보조금을 받는 거대 정당으로선 용처가 마땅치 않아 현수막에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라며 “문제가 되는 현수막을 떼는 지자체의 행정비용도 결국은 세금”이라고 했다.
①근거 없는 음모론 확산
②특정인 혐오 자극
윤석열 대통령 폄하성 현수막도 적지 않다. 한·일 정상회담 등과 관련해 진보당은 “나라까지 팔아먹는 영업사원” “일(日)편단심”이라는 현수막을 제작했다. 진보당 광주시당은 대선기간이던 2021년 10월 윤 대통령을 ‘윤틀러’(윤석열+히틀러)라고 지칭한 현수막을 붙이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현수막 공격의 주 대상이다. 지난 2월 국민의힘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드라마 ‘더 글로리’ 대사에 빗대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라는 현수막을 달았다.
③세지는 막말
지역색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당시 강성희 진보당 후보를 겨냥해 국민의힘 전주을 당원 일부는 “전주는 공산주의 해방구인가” “친일 매국노보다 우리는 간첩이 더 무섭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럼에도 강 후보는 재선거에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는데, 최근 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일본의힘이 진짜 반국가세력”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도 넘은 막말과 수준 낮은 문구의 현수막이 정치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며 “특히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목을 맬수록 중앙당의 자극적인 현수막을 무조건적으로 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현수막이 공해와 폐해로 전락하고 있다면 차라리 ‘현수막 백지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