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한 맘카페엔 김포의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밀쳤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원생의 이모가 학대를 단정하는 글을 재차 올리면서 사태는 확산했다. 교사 신상이 순식간에 퍼졌고, 감당하기 힘든 비난이 쏟아졌다. 폭행까지 당한 교사는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 결과 학대는 없었다. 시발점이 된 이모의 글엔 이런 부분이 있다. “봤느냐고요? 아니요. 10여 명의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혼자 생각한 걸, 그저 들은 걸 진짜처럼 말하는 세상이다.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게 때때로 그 결과가 심각해서다. 최근 한기호 의원이 치른 고초가 그렇다. 그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인터넷에 도는 이야기를 모아서 쓴 건데 이리 퍼질 줄이야”라며 올린 거짓 글은 단 몇 시간 만에 그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렸다. 힘깨나 쓴다는 국회의원도 거짓의 폭풍 앞에선 힘없는 피해자일 뿐이었다. 진실만큼 거짓도 힘이 세다.
그래서일까. 그 힘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야당의 한 청년 정치인은 김건희 여사가 든 에코백 속에 ‘샤넬 파우치’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사흘 뒤 글은 삭제했으나 사과는 없었다. 한 의원 사건을 두고 김어준은 “국민의힘 3선인데 전혀 보도가 없다. 대단한 파장이 있을 사안”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는 뉘앙스다. 이내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역시 사과는 없었다.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클라라와 달리 이들의 거짓말엔 상대방이 법적·도덕적 책임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분명한 저의가 있다. 더 악의적이다. 정작 본인들은 ‘아니면 말고’ 뒤에 숨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반복 또 반복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거짓이 쌓이면 불신의 총량도 증가하고,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위험천만하다. ‘아니면 말고’의 싹을 서둘러 잘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