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5인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없어”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서 ①사전 재난 예방조치 ②참사 발생 뒤 사후 대응 ③참사 이후 발언 등 세 부분으로 나눠 탄핵사유 인정 여부를 판단했다.
유남석·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세 부분 모두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참사를 막기 위해 사전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용산경찰서나 용산구청에서 혼잡관리와 관련해 별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언론도 핼러윈 인파를 보도하면서 다중밀집사고를 예상하지는 못했다”며 “개방된 장소에서, 주최자 없는 대규모 자발적 행사의 다중밀집사고 예방을 위해 구체적 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후 대응에 대해서도 “소방·경찰 등이 지원돼 중대본·중수본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수행됐다”며 재난안전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 위반,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법정의견을 낸 이들 5명의 재판관은 “참사 이후 이상민 장관의 발언은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거나 부적절해, 장관에게 기대되는 충분한 주의를 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만 “참사의 원인이나 경과를 적극 왜곡하려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시간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답변하며 한 발언”이라며 “빠르게 사과한 점, 기억에 반해 거짓을 말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한 진술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주심 이종석 재판관은 “이 사건 참사는 어느 한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된 것이 아니라 주최자 없는 축제, 정부기관의 재난 대응 역량부족, 재난상황 행동요령 교육 부족의 총체적 결과물”이라며 “장관으로서 대응 과정에 최적의 판단을 못했다 하더라도, 재난 대응이 미흡함을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탄핵심판 절차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관 4인 “이상민 실언은 위법, 파면할 정도는 아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건 맞지만,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들은 “참사 이후 이 장관의 발언들에 책임 회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난 상황에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지만, 국민의 신임을 박탈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도 이날 헌재 방청석에 앉아 선고를 지켜봤다. “9인 재판관 전원 기각으로 판단한다”는 선고가 끝나고 재판관들이 나간 뒤에도 유가족들은 흐느끼며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선고 직후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는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은 죽었고, 헌재는 다분히 정부에 정치적이었다”며 이날 결정을 비판했다. 옆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보수단체 회원들이 유가족을 향해 “이태원 사태는 북한과 연루됐다”고 소리를 지르자 몸싸움이 벌어졌고, 유가족 1명이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탄핵 청구가 기각되면서 이상민 장관은 즉시 직무에 복귀했다. 이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탄핵소추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10·29 참사와 관련해 더 이상의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 결과에 대해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이 툭하면 탄핵을 꺼내는데, 헌재도 이런 부실한 사건을 6개월이나 끌다가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리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