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시절 공격적인 언변으로 전랑외교의 대표주자로 불렸던 그의 회견은 다소 예상과 달랐다. 테이블에 약간 몸을 숙인 채 말하는 자세, 말하는 동안 광대뼈·미간·눈썹이 움직이지 않는 표정, 강경한 표현보다 원칙과 기준을 앞세우는 화법. 1시간 40여 분간 보여준 모습은 그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돌덩이 같다는 느낌을 줬다. 왕이 전 외교부장의 확신에 찬 표정, 감정이 드러나는 손짓과 몸짓을 봐왔던 나로선 꽤 의외였다.
매일 열리는 외교부 기자회견에 친 부장의 거취를 묻는 질문이 등장하지만 대변인들은 “상황을 알지 못한다” “제공할 정보가 없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나 학계에 문의해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가장 최근 소식은 지난 21일 셰펑(謝鋒) 주미 중국대사가 아스펜(Aspen) 안보포럼에 나와 친 부장의 잠적에 관한 질문에 “기다려보자”(Well, let’s wait and see)라고 말한 것이다. 진행자가 재차 물었지만 셰펑 대사는 전혀 다른 대답으로 말을 돌렸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친 부장의 불륜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구체적으로 홍콩 봉황망 TV 앵커가 불륜 상대로 지목되는가 하면 과거 중국 당 간부들이 불륜으로 자식을 낳았을 경우 ‘중혼죄’로 처벌받았다는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당초 건강 문제라고 했던 외교부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 수위를 낮춘 점, 외교 수장에 대한 루머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당국의 공식 대응이 없다는 점 등이 그의 신변 이상설에 힘을 싣는다. 중국 중앙기율위 조사 대상으로 등장할지, 건강이 회복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 사태가 중국 당 조직이 얼마나 비밀스럽게 일을 처리하는지 또 한 번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분명하다. 시진핑 주석이 3연임한 20차 당 대회 이후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