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몰리션’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그린다.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깨어나보니 자신은 멀쩡하고 아내는 숨졌다. 장인은 딸을 여읜 비통함을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죽으면 홀아비이고, 부모가 죽으면 고아지. 하지만 아이가 죽은 사람은 부르는 말도 없어. 없는 게 맞지.”
커피 머신, 머리카락, 냉장고 같은 것들에 대해 책 『슬픔의 위안』(론 마라스코)은 ‘슬픔에 빠진 이들을 후려치는 모루’(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 밑에 받치는 쇳덩이)라고 말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숨을 멈추게 하는 모루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미리 피하겠는가? 불가능하다. 바로 이 때문에 모루가 그렇게 절망스러운 것이다…. 텔레비전도 기습적으로 모루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눈물을 자극하는 광고와 가슴 미어지는 뉴스….’
가족을 앗아간 참사가 다시 되풀이되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모루가 세상에 또 있을까. 슬픔의 모루를 더는 만들지 말자. 그것이 애통해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