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밸리에서 폭염이 ‘낭패’ 수준을 넘어 인명 사고를 부르는 일이 근래 잦다. 지난해 6월 이곳에서 한 60대 남성이 차 기름이 바닥나자 도움을 청하려고 도로를 걷다 폭염을 견디지 못해 쓰러져 숨졌다. 지난 3일에는 또 다른 60대 남성이 에어컨이 고장 난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은주가 연일 역대급으로 치솟는 요즘 미국 일기예보 지도를 보면 서부·남부는 기록적인 폭염을 나타내는 보라색·적색으로 벌겋게 물들어 섬뜩한 느낌을 줄 정도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폭우가 동시에 오고 가뭄·홍수·산불이 일상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인 날씨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공개된 AP통신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조 바이든 정부 지지도가 크게 갈리고 낙태·총기정책을 놓고도 진보와 보수 진영이 양극화했는데, 유독 기후변화 정책을 놓고는 찬성률이 민주당(56%)과 공화당(54%) 지지층 모두 과반을 기록했다. 전임 트럼프 정부 때만 해도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대놓고 무시하는 등 기후변화 이슈가 정쟁 소재가 되곤 했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 이슈 앞에 첨예한 진영 논리도 더는 힘을 못 쓰는 것 같다.
지난해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은 데 이어 올해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비극의 현장이 됐다. 여야가 정쟁 중단을 외치며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쟁 중단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과거의 관성적인 대응만으로는 극한 기상이변이 뉴노멀이 된 시대에 맞설 수 없다.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당장 할 일부터 중장기 플랜까지 촘촘히 담은 기후변화 대비책을 내놓아야 한다.